[신나는 공부]초등생부터 진로찾아 삼만리

  • Array
  • 입력 2010년 11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입학사정관제 스트레스… 엄마들 “진로 빨리 결정”


《입학사정관제가 입시의 핵으로 떠오르면서 ‘진로’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스트레스가 증폭되고 있다. 입학사정관제에선 관심 분야에 대한 일관적, 지속적인 활동이 중요한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일찍 진로를 결정할수록 입시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너도나도 ‘꿈 찾기’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것이 문제. 여기에 학생이 직접 비교과활동을 기록·관리할 수 있는 ‘창의적체험활동종합지원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입학사정관이 초등학생 때의 활동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게 되자 맥락 있는 진로이력을 만들려는 학생과 학부모는 더욱 분주해졌다. 보다 빨리, 보다 명확한 진로를 찾아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학부모 사이에선 ‘과학고는 7세 때, 대학은 초등 4학년 때부터 진로를 결정해 준비를 시작해야 승산이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는 실정이다. 입학사정관제가 학생의 진로를 강요하는 건 아닐까? 진로에 대한 과도한 강박관념 때문에 빚어진 부작용은 없을까? 초등생과 학부모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들어봤다.》
○ “손놓고 있다가 뒤처질까 두려워…” 박 군의 진짜 꿈은?

명확한 진로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보니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하기 위한 꿈과 진짜 하고 싶은 꿈이 따로 있는 사례도 발생한다. 일관된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입시제도와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학부모의 욕심의 희생양은 다름 아닌 학생이다.

수학자, 초등학교 교사, PC방 사장, 약사, 휴대전화 디자이너, 달리기 선수. 초등 6학년 박모 군(12·서울 송파구)이 되고 싶은 것이다. 심하게 아팠던 2학년 때 약을 지어줬던 약사가 멋있어 보여 약사를 꿈꿨다. 5학년 땐 교과서 밖의 넓은 세상에 대해 설명해주던 담임교사를 보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터치폰이 나오기 전부터 손으로 화면을 움직이는 휴대전화를 상상했다”고 주장하는 박 군의 꿈 목록에는 멋진 휴대전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도 있다. 온도계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를 개발해 과학실험을 할 때 물 속에 넣어 온도를 잴 수 있는 휴대전화를 만들고 싶단다. 그의 꿈은 해마다 변하고 있지만 학교생활기록부 장래희망을 쓰는 난에는 4학년 때부터 ‘법조인’이 적혀있다. 박 군은 저학년 때부터 부모로부터 “네가 판검사나 변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성적은 최상위권. 5학년 때는 전교 부회장을 지냈다. 법조인이라는 꿈에 맞춰 나름의 진로계획도 세웠다. “중고교 때 전교 1등을 하면서 법을 공부하는 동아리에서 활동할 거고요. 법에 관한 책도 읽을 거예요. 입학사정관제에선 리더십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전교회장에도 도전할 거고요. 대학에서 어떤 걸 공부할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로스쿨에 가야한대요.”

박 군의 어머니는 “입학사정관제를 고려해서 아이가 한 가지 진로를 가지고 공부하도록 이끌고 있다”면서 “지금은 아이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뒤늦게 아이가 목표를 잡았을 때 일관성 있게 해놓은 것이 없으면 다른 학생에 비해 떨어져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사교육업계… 진로캠프, 적성검사, 컨설팅 성행

서둘러 아이의 진로를 찾아 준비를 시켜야겠다는 생각에 직접 행동으로 나서는 학부모도 많다. 최근 사교육 업계엔 진로 컨설팅, 진로적성평가, 진로적성캠프는 물론이고 사주로 보는 적성검사법까지 성행한다. 이들이 홍보마케팅 문구로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바로 ‘입학사정관제 대비용 진로 찾기’다.

초등 6학년 딸을 둔 학부모 김정희 씨(40·서울 강남구)는 최근 딸이 문과와 이과 중 어느 쪽에 적성이 맞는지, 어느 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좋을지 알고 싶어 ‘학과·계열 검사’를 받도록 했다. 김 씨는 “예전에는 아이가 어느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해서 적성검사를 받았다면 이젠 진로에 근거해 포트폴리오나 독서기록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검사를 받게 한다”면서 “스스로 진로를 결정할 때까지 기다렸다간 입학사정관제에서 손해 볼 것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고 말했다. 지문으로 진로와 적성을 알아보는 업체에도 입학사정관제 도입 이후 학부모의 문의가 크게 늘었다. 이들 업체에선 특수 센서로 학생의 지문을 채취해 판독한 뒤 △선천적 적성 △인격·직업특성 △학습유형 등 결과를 20쪽 분량으로 분석해 학부모와 상담한다. 비용은 회당 10만 원 내외. 한국지문적성평가원 김용 대표는 “서울 강남지역 학부모는 초등 3, 4학년 때 외고, 과학고, 영재고 등 학교 진로와 이과, 문과 계열을 알아보기 위해 검사를 신청한다”면서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해 학생의 적성과 진로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만들려고 검사를 시키는 학부모도 많다”고 말했다. 진로 캠프도 크게 늘었다. 5박 6일 정도 진행되는 캠프의 비용은 60만∼70만 원, 일부 캠프 비용은 100만 원을 웃돈다.

○ 과학 일색 포트폴리오… “왜 이 학교에 지원했느냐”고 물으면?

어렵사리 진로를 찾아도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일찌감치 진로에 맞춰 만든 포트폴리오가 진로가 바뀌자 외려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는 학부모가 있다. 학부모 김모 씨(42·서울 양천구)의 아들은 특히 과학 쪽에 관심이 많았다. 진로캠프에도 다녀오고 적성검사도 수차례 봤다. 늘 이성적, 창의적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교내, 교육청, 사설업체에서 실시하는 과학 관련 대회에 모조리 출전했다. 과학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읽고 학생부 장래희망 난에는 4학년 때부터 과학수사요원, 과학자라고 적었다. 최상위권의 성적과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지난해 국제중에 지원했지만 1차에서 탈락했다. 김 씨는 “과학 관련 수상실적, 활동 일색인 학교생활기록부를 보면서 평가에서 안 좋게 작용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학생부에 학교에서 실시한 적성검사 결과도 적혀 있었는데 100% 이과형인 아이를 보며 평가자가 ‘왜 우리 학교에 지원했나’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솔직히 다양한 활동을 밀어줄 형편이 안 되니 진로를 빨리 파악해 한 길로만 ‘올인(다걸기)’하자는 생각이었는데 실패를 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