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만나는 6·25]<7>참전 기념품에 담긴 사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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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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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아리랑 스카프’의 주인

전선의 美병사, 엄마에 편지 곡-가사 새겨진 스카프 동봉
곧이은 전사 통보에 엄마는 아들 떠올리며 “아~리랑”

아리랑 악보와 가사가 실린 실크스카프는 참전용사들이 고국의 여성들을 위해 구입한 인기선물이었다(위). 일본 음반회사가 제작한 ‘사운드 오브 코리아’에는 탱크 헬기 경비견 소리와 함께 아리랑 노래가 담겼다(아래 왼쪽).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았던 목각 사진첩은 표지를 열고 태엽을 돌리면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온다(아래 오른쪽). 사진 제공 정선아리랑연구소
아리랑 악보와 가사가 실린 실크스카프는 참전용사들이 고국의 여성들을 위해 구입한 인기선물이었다(위). 일본 음반회사가 제작한 ‘사운드 오브 코리아’에는 탱크 헬기 경비견 소리와 함께 아리랑 노래가 담겼다(아래 왼쪽). 선물용으로 인기가 높았던 목각 사진첩은 표지를 열고 태엽을 돌리면 아리랑 노래가 흘러나온다(아래 오른쪽). 사진 제공 정선아리랑연구소
‘A RI RANG A RI RANG A RA RI- YO-- A RI RANG HIGH HILL I CLIMB IF YOU LEAVE FROM ME AND IF YOU GO(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1952년 봄 클라이드 상병의 미국 고향집에 도착한 편지에는 낯선 악보와 가사가 빼곡하게 적힌 흰색 실크스카프가 동봉돼 있었다. 클라이드 상병은 편지에서 ‘제대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건강하게 기다려 달라’는 당부와 함께 ‘어머니가 생각나 편지와 함께 보낸다’며 스카프에 적힌 한국민요(Korean Folk Song)를 소개했다.

그러나 클라이드 상병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가 보낸 스카프는 어머니에게 남긴 유품이 됐다. 클라이드 부인은 먼 타국에서 전사한 아들이 생각날 때마다 이 스카프를 손에 쥐며 아리랑을 흥얼거렸다. 이 스카프는 클라이드 부인이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품을 정리하던 가족에 의해 수집가에게 넘겨졌다.

이 스카프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기증된다. 2004년 미국의 한 수집가로부터 스카프를 구입한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 소장(47)은 “동아일보가 연재하는 ‘유물로 만나는 6·25’ 시리즈를 흥미 있게 읽다가 (기증을) 결심하게 됐다”며 “내게도 무척 소중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지만 전쟁기념관에서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당시의 상황과 분위기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은 고향에 있는 어머니나 부인, 여자친구를 그리며 아리랑이 담긴 스카프를 선물로 많이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 클라이드 상병처럼 그것이 유품이 된 장병이 한둘이었겠습니까. 2002년 월드컵 축구 때 6·25전쟁에서 700여 명이 전사한 터키를 ‘형제 나라’라며 환대하던 사람들이 정작 3만 명 넘게 희생된 미국에 대해서는 오히려 반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질 때가 있습니다.”

진 소장은 1997년부터 ‘아리랑’이 담긴 기념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사업차 미국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아리랑을 부르는 노병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부터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들이 ‘아리랑’을 기막히게 잘 부른다는 얘기를 듣고 반신반의했는데 정말이었습니다. 관심이 생겨 자료를 모으다 보니 1950년대 미국에서 ‘아리랑’이 인기가 있었고 유명 가수들의 음반에 많이 삽입됐다는 것도 알게 됐죠.”

이렇게 모은 6·25전쟁 관련 아리랑 자료는 모두 400여 점에 이른다. 음반 악보 손수건 오르골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아리랑 노래가 새겨진 스카프는 6개. 음반 중에는 탱크 경비견 헬기 소리와 함께 아리랑이 담긴 소노시트(화보 겸 음반 기능을 갖춘 비닐레코드)도 있다. 한국에 주둔한 유엔군들을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표지에는 미군이 한국인 농부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는 사진이 담겨있다. 아리랑이 흘러나오는 오르골 기능을 갖춘 목각 사진첩은 당시 고가에 거래되던 고급 선물 품목이었다.

진 소장은 지난달 19일부터 강원 정선의 정선아리랑연구소에서 ‘아리랑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이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는 연말까지 계속된다.

정선=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美로 건너간 ‘아디동 블루스’ ▼


유명 재즈연주가-가수들 50년대 아리랑 음반 잇달아 내

전쟁의 역설일까. 6·25전쟁은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아리랑이 대표적이다. 아리랑은 6·25전쟁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음악인과 참전용사들을 통해 미국에 건너갔고 1950년대 미국 대중가요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국 재즈계의 전설적인 연주자인 오스카 페티퍼드는 6·25전쟁 때 한국 위문공연을 왔다가 야전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통역관이 흥얼거리는 아리랑의 멜로디를 듣고 단숨에 매료됐다. 귀국 후 그는 1952년 발표한 정규 음반에 재즈곡 ‘아디동 블루스(Ah-Dee-Dong Blues)’를 수록했다. ‘아디동’은 통역관의 ‘아리랑’ 발음을 잘못 알아들은 탓이다. 이 음반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복각되기도 했다.

베트남전쟁의 반전 운동가로 명성을 날린 가수 피트 시거도 ‘아리랑’과 뗄 수 없는 인연이 있다. 6·25전쟁 참전용사인 그는 1951년 경기 포천과 의정부 지역에서 전투를 하면서 남북한 병사들이 모두 아리랑을 부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957년 발표한 음반에서 밴조를 연주하며 ‘아리랑(Arirang)’을 구성지게 부른 그는 공연 때마다 “지금 남북이 분단돼 있지만 남한과 북한이 하나라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노래”라고 소개했다.

아리랑이 이렇게 인기를 모으자 6·25전쟁과 무관한 아이돌 가수까지 나섰다. 당대의 떠오르던 신예 미녀가수 엘리 윌리엄스도 6·25전쟁 종군기자 출신인 스탠 리치의 도움을 받아 1954년 ‘아디동’이라는 EP(도넛음반)를 발매했다. 이 음반은 발매 1주일 만에 현지 언론에서 ‘금주의 앨범’으로 선정되는 등 많은 화제를 모았다.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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