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 학교안전 SOS/동에 번쩍, 서에 번쩍… 떴다, 아버지 순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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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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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Y초교 자원봉사대
불꺼진 운동장… 주택가 골목… 으슥한 공원…
밤 8∼10시 팀 이뤄 구석구석 누벼
삼삼오오 다니던 불량학생들 많이 줄었어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로부터 “우리 자녀는 직접 지키겠다”고 나선 아버지 순찰대(사진 위). 아버지회원들은 매일 저녁 교내외 곳곳을 순찰하며 위험요소가 없는지 점검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흉악 범죄로부터 “우리 자녀는 직접 지키겠다”고 나선 아버지 순찰대(사진 위). 아버지회원들은 매일 저녁 교내외 곳곳을 순찰하며 위험요소가 없는지 점검한다.
《“생각해보세요. 범인이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 우리 학교, 우리 아이들을 노렸을지 누가 압니까.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솟아요. 우리가 나서는 방법밖엔….”(학부모 이모 씨·서울 영등포구)
초등학생 여아를 대상으로 한 끔찍한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경찰과 학교, 교육당국의 안전망에 허점이 드러나자 학부모들이 ‘차라리 우리가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나섰다. 초등생 납치 성폭행 사건(일명 ‘김수철 사건’)이 일어났던 모 초교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아 사건에 대한 충격이 더욱 컸던 Y초교의 아버지회 순찰을 동행했다.》

1일 오후 8시 서울 Y초교 동관 옆. 이 학교 아버지회가 축구부, 안전둥지회와 함께 임시 사무실로 사용하는 회색 컨테이너 건물 앞에 아버지 순찰대원들이 속속 도착했다. 경찰 마크가 새겨진 조끼와 모자, 벨트까지 착용한 뒤 ‘안전순찰’이라고 쓰인 완장을 차고 붉은색 야광봉, 손전등을 준비했다. 한 아버지회원은 “일반적으로 입는 노란색 조끼를 입을 수도 있지만 제복을 갖춰 입었을 때 순찰 효과가 더 높아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서 구입했다”고 했다.

30분쯤 전까지도 환했던 운동장이 금세 어두워졌다. 교무실과 행정실을 제외하고는 교내에 불이 켜진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중고생으로 보이는 학생 몇 명만이 컴컴한 운동장에 남아서 축구를 했다.

순찰대는 우선 본관 뒤쪽과 강당 뒤쪽 으슥한 공간을 살폈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3명과 여학생 1명이 오토바이 한 대를 세워놓고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순찰대원들이 손전등을 비추고 “어느 학교 학생이냐, 이름이 뭐냐, 여기서 이러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머뭇거리던 학생들이 담배를 끄고 흩어졌다.

초등 1학년 딸과 5학년 아들을 둔 임길섭 씨(40)는 “처음에 순찰 돌 땐 학교 구석에 모여 떠들고 담배를 피우는 중고생이 많았다”면서 “이런 학생들은 귀가조치를 해도 바로 집에 가지 않고 주위를 배회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쫓아내면 동네 골목에서 마주치고 공원에서 또 마주치는 학생도 있었다”고 말했다. 임 씨는 “하지만 한 달 전부터 본격적으로 순찰을 돌자 요즘엔 이런 불량 청소년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덧붙였다.

정문 앞엔 초등 저학년으로 보이는 여자어린이가 혼자 서 있었다. 한 아버지회원이 “어디에 사느냐, 왜 여기 혼자 있느냐”고 묻자 아이는 “언니, 남동생과 왔는데 언니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회원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네 살짜리 남동생과 강아지와 함께 있는 여자 어린이를 발견했다. 장사를 하는 부모를 대신해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초등 5학년 학생이었다. 순찰대는 학교에서 7분 정도 떨어진 집까지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가도록 뒤따랐다.

학교 정문 맞은편 골목엔 다세대주택 밀집지역이 있었다. 한 사람이 다니기에도 좁은 길이 펼쳐졌다. 초등 1학년 아들을 둔 김영화 씨(44)는 “범인 김수철이 사는 곳이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라고 들었다”면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런 곳이 있는지 순찰 전에는 몰랐다”고 말했다. 골목 안쪽은 재개발 예정지였다. 빈집도 더러 있었다. 한 회원은 “이 지역이 교통이 좋은 데 비해 3, 4평짜리 작은 방이 많고 저렴하게 방을 구할 수 있어서 일용직 노동자나 중국교포들이 많다”고 했다.

인근 아파트 놀이터, 공원까지 둘러본 뒤 순찰대는 학교로 돌아왔다. 교내를 한 번 더 돌자 오후 10시에 가까웠다. 순찰대원들은 “요즘은 공원 쪽에 불량한 학생들이 많이 준 것 같다. 다음주엔 다른 쪽을 좀 더 둘러보자” “요즘 중고생 기말고사 기간이라 늦게 학원에서 돌아오는 학생이 많다. 오후 10시쯤에는 학원 위주로 순찰하자”는 등 의견을 나눴다.

Y 초교 아버지 순찰대는 지난달부터 월∼토요일 오후 8∼10시에 하루도 빠짐없이 순찰을 돌고 있다. 회사원, 사업가, 군인, 종교인 등 본업으로 바쁘지만 예측할 수 없는 범죄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겠다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이 학교 정모 부장교사는 “야간 시간대, 토요일 등 학교의 안전이 불가피하게 취약해지는 때를 아버지 순찰대가 보완해주기 때문에 정말 도움이 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 교사는 “잇따른 사건 이후 청원경찰, 폐쇄회로(CC)TV 설치 등 여러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전기세 때문에 교내 보안등도 제대로 못 켜는 학교의 상황을 알고 실현 가능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 관악구에선 엄마들이 나섰다. 14명의 엄마 모니터요원들은 20일부터 열흘간 인근 학교를 중심으로 학생들의 등하굣길에 위험 요소가 없는지 점검했다. 요원들은 △등하굣길 조명(가로등)의 밝기나 위치가 적절한지 △가로등 작동이 잘되고 있는지 △등교시간(오전 8시∼8시 반), 하교시간(오후 3시 반∼5시), 야간(오후 9시 이후) 시간대별로 주민들이 얼마나 다니는지 △눈에 잘 띄지 않는 으슥하고 위험한 곳은 어디인지 △위급상황 시 학생들이 도움을 청할 곳이 있는지 △안전에 취약한 지역이나 정기적으로 순찰을 요하는 지역이 있는지 등을 표로 만들어 점검했다.

초등 6학년과 3학년 딸, 초등 1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임영애 씨(39·서울 관악구)는 “최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후 딸들 생각을 하면 한숨부터 나온다”면서 “늘 신경이 쓰이면서도 직장맘이라 아이들의 안전을 꼼꼼히 살피지 못했지만, 모니터요원으로 모니터링을 하면서 위험한 곳, 개선이 필요한 점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니터 요원들은 초등 고학년 학원 수업이 끝나는 시간, 중고생의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는 오후 10시경 인근 중학교와 고등학교 앞을 둘러봤다. 학교 앞 주택가에 인적이 매우 드문 지역이 눈에 띄었다. 임 씨는 “순찰차가 계속 순찰을 돈다고 하지만 1층에 주차장이 있는 빌라나 다세대 주택 등 골목 구석구석은 순찰차가 다니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A 중학교 앞에는 위험한 순간에 대처할 안전지킴이집이나 가게가 한 곳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위험요소, 안전취약요소 등을 꼼꼼히 정리해 보고서로 제출했다. 서울 관악구청 관계자는 “모니터링 결과에 따라 관계부서와 협조하고 경찰서, 학교와도 합의해 문제점을 보완할 것”이라면서 “개선사항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도록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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