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사고원인 섣부른 판단 말아야” 신중 또 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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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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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정치권 신중한 행보
언론에도 추측보도 자제 요청
북한소행이든 내부폭발이든
메가톤급 후폭풍… 정부 큰 부담

안보관계장관회의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천안함이 침몰한 해역의 지도를 가리키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인명구조 작업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사진 제공 청와대
안보관계장관회의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오후 청와대 지하벙커에서 열린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천안함이 침몰한 해역의 지도를 가리키며 뭔가를 얘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인명구조 작업에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사진 제공 청와대
청와대는 해군 초계함인 천안함의 침몰 사고가 발생한 지 3일째인 28일에도 사고 원인에 대한 언급을 삼간 채 극히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당국에서 조사결과를 발표할 때까지 언론에서 섣불리 판단하거나 다른 추론을 갖고 언급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 특별히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전날에도 사고 원인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어떤 것도 예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사고 발생 후 이날까지 4차례나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현장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 받았다. 이 자리에선 추정 가능한 사고 원인이 다각도로 거론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실체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천안함에 대한 해난구조대(SSU)의 접근이 한계를 보이고 있어 아직까지 외부에 공개할 만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박 대변인은 “우리도 사고 원인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침몰 해저의) 현장 시계(視界)가 1m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섣부른 판단에 따른 후폭풍을 우려하는 모습도 보인다. 북한과의 연계설이든, 내부 폭발설이든 정확한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가능성’만 제시했다간 감당할 수 없는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 사고에 북한이 관계됐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동북아 정세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다. 실제로 천안함 침몰 사고 직후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반영되면서 국제 금값이 급등하기도 했다. 진상조사 결과 북한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엔 정보 분석 능력 부족을 드러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내부 폭발 가능성을 제기할 경우에도 이달 초 공군 전투기 추락에 이은 육군 헬기 사고와 맞물려 총체적인 군기 해이 지적과 함께 책임론으로 번질 수 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번 사건은 김성찬 해군참모총장이 19일 취임한 지 일주일 만에 발생했다.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의 한 참모는 “(원인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다”라고 했고, 다른 참모도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원인을 얘기하면 그 결과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천안함을 건져내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정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진상 규명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사고 원인 파악이 늦어질수록 정부에 대한 비판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마냥 신중론만 고수하기는 어려운 게 아니냐는 전망도 적지 않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정부-지자체-시민단체 행사도 자제
靑 어린이기자단 출범식 연기
걷기대회-축하공연 등 축소▼

천안함 침몰 사고로 공직사회가 비상대기 상황에 들어가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했던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청와대는 27일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할 예정이었던 청와대 어린이 기자단인 ‘푸른누리 제2기 출범식’을 연기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도 28일로 예정됐던 미국 방문 일정을 연기했다. 이 위원장 측근은 “이번 초계함 사태가 수습되는 것을 지켜본 뒤 방미 일정을 재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이 주관하는 행사들도 대폭 축소되거나 취소됐다. 이날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호수공원에서 열린 시민 걷기대회는 비보이 공연, 풍물놀이, 길놀이 등 축하공연을 생략한 채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4000여 명의 참가자들은 실종 장병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묵념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 200여 명도 이날 서울역광장에서 ‘종교계의 정치활동 자제 촉구’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지만 “민감한 시기에 회견 강행으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회견을 취소했다.

세계자연보호기금과 녹색연합이 글로벌 캠페인으로 27일 서울 충무로 한옥마을에서 진행한 ‘지구촌 불끄기 행사’도 침몰 사고를 감안해 일부 공연이 취소된 채 치러졌다. 또 민주노동당과 한국진보연대 회원 등 80여 명이 참석한 이날 ‘금강산 관광재개 촉구대회’도 노래 공연이 생략된 채 40분으로 축소해 진행됐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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