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층 근무하는 사람중에 감염자 나왔다는데…”

  • 입력 2009년 9월 3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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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이진한 의사 기자가 신종 인플루엔자A(H1N1)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한강성심병원에서 신종 플루로 의심되는 초등학생에게 독감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강성심병원
본보 이진한 의사 기자가 신종 인플루엔자A(H1N1)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한강성심병원에서 신종 플루로 의심되는 초등학생에게 독감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한강성심병원
11층 회사원 “불안해서” 병원 달려와

■ 본보 이진한 의사 기자 신종플루 현장 진료해보니

외래 159명중 확진 3명… 대부분 ‘걱정 환자’
“흔한 독감수준… 플루 아닌 공포를 치료해야”

《8월 3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 한림대 의대 한강성심병원 신종 인플루엔자A(H1N1) 임시진료실. 응급실 옆쪽에 대형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든 임시진료실에는 신종 플루 진료를 받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기자는 신종 플루 거점병원으로 지정된 한강성심병원에서 8월 31일과 9월 1일 이틀 동안 신종 플루가 의심돼 찾아온 환자들을 직접 진료했다.》

임시진료실에는 기자를 포함한 의사 3명, 간호사 2명, 처방 담당자 1명 등 총 6명이 바쁘게 움직였다. 의사들은 인턴과 가정의학과, 내과 전공의들이 순번을 정해서 오전과 오후로 나눠 진료를 맡았다. 31일에는 80명, 1일에는 79명의 환자가 방문했다.

“크게 입을 벌려보세요. 귀이개 모양의 면봉이 입안에 들어가서 목 부위를 긁어내는데 약간 불편할 수 있습니다.”

임시진료실을 찾은 환자는 우선 열 체크와 독감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는 신속항원검사를 받는다. 신속항원검사는 완벽한 검사가 아니라 50% 정도만 알 수 있다. 만약 검사 결과가 양성이면 좀 더 정밀한 확진검사(RT-PCR)를 받는다. 확진검사 결과는 다음 날 나온다.

진료 의사들은 수술용 마스크를 썼다. 정명숙 수간호사는 “지정 마스크는 원래 N95 마스크였는데 오늘부터 정부 지침이 일반 수술용 마스크로 바뀌었다”며 “요즘 정부 지침이 자주 바뀌어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인으로는 수술용 마스크보다는 N95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안심되는 상황. 혹시라도 환자가 기침을 해서 침이 얼굴에 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N95 마스크는 바이러스 차단효과가 95%에 달한다. 수술용 마스크는 침을 막는 효과는 있지만 N95 마스크에 비해 차단 기능이 떨어진다.

지난달 31일 오전에는 초등학생들이 몰려왔다. 대개 열이 나자 학교에서 보낸 학생들이다. 이들이 다시 학교에 가려면 ‘이상 없다’는 진단서가 필요했다. 오후에도 30여 명의 환자가 왔지만 신속항원검사 결과 양성인 환자는 없었다.

이틀 동안 3명의 환자가 신종 플루 확진 판정을 받았다. 간호사에게서 “신종 플루 확진검사결과 양성 환자예요”라는 소리를 들을 때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학생 이모 씨(22)는 “지난주에 학교 앞 술집에서 친구 5명이 술을 마셨는데 나를 포함해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면서 “나머지 3명도 감기 증세가 있는데 검사는 안 받았다”고 말했다. 이 씨에게 일주일 정도 외출을 삼갈 것을 당부하고 5일분의 타미플루를 무료로 처방했다. 확진환자에겐 의사 판단에 따라 무료 처방을 할 수 있다.

국내 유치원 원어민 강사로 일하고 있는 미국인 포메샤임 가보르 씨(31)도 임시진료실을 찾았다. 그는 서툰 한국말로 “건강하지만 원생 어머니들이 신종 플루에 걸리지 않았다는 확인서를 떼어서 제출하라고 한다”고 말했다.

복통 때문에 찾아온 한모 씨(31), 약간의 열감이 있는 임모 씨(32·여), 회사 직원 중에 신종 플루 환자가 있어서 찾아온 김모 씨(25·여) 등 단순히 걱정 돼서 찾아온 사람들이 절반에 가까웠다. 회사 11층에서 일하는 최모 씨(35)는 7층에 근무하는 사람 중에 감염자가 생기자 그 환자랑 친한 친구가 같은 층에 근무한다는 이유로 이곳을 찾았다. 신속항원검사를 했더니 역시 정상이었다.

함께 진료를 했던 내과 이승화 전공의는 “며칠 전 여의도 LG빌딩에서 회사원 100여 명이 검사를 받기 위해 온다고 연락해와 잔뜩 긴장했다”면서 “고열 목감기 기침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특별한 증상이 없는데도 회사원들이 신종 플루 공포감에 휩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진료 기간 많은 사람을 진료하면서 느낀 것은 신종 플루는 독감 수준에 불과하지만 막연한 공포심이 더 크다는 것. 이 전공의는 “신종 플루 공포감이 도를 지나쳐 서로가 믿지 못하는 상황까지 치닫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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