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통계’에 갇힌 노동부

  • 입력 2009년 9월 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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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시행후 예상 깨고 50% 이상 정규직 전환
“상당수는 ‘무늬만 정규직’… 법 준수 딜레마”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비정규직보호법)’ 시행 이후 정부가 우려했던 수준의 ‘해고 대란’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당초 해고자와 정규직 전환자 비율이 7 대 3 정도로 비정규직의 대량 해고가 발생할 것으로 봤다.

그러나 최근 1만 개 표본기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7월 이후 정규직 전환 비율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예상했던 30%를 넘어 절반을 웃도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와 재계는 순수한 정규직 전환 외에 비정규직법 자체가 현장에서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원인도 작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 딜레마에 빠진 노동부

7월 1일부터 적용된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라 사업주는 2년 이상 근무하는 비정규직 근무자를 무기계약직(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때문에 노동부는 “7월 이후 정규직 전환을 꺼리는 사업장에서 비정규직의 대량해고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태조사 결과 기현상이 발생했다. 30% 이상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2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근로를 하고 있는 것이다.

허원용 노동부 고용평등정책관은 “사업주도 근로자도 모두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면서 기간만 2년을 넘긴 사람이 상당히 많이 나타났다”며 “법적으로는 정규직이 됐지만 사업주들은 언제든지 내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이런 애매한 상태의 비정규직 근로자(법적으로만 정규직)들이 상당수를 차지해 해고자가 예상보다 적게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법 취지대로 노동부가 비정규직 남용을 막기 위해 근로감독을 철저히 할 수도 없다. ‘2년 이상 비정규직 고용 금지’를 주지시키는 것은 결국 ‘무늬만 정규직’인 근로자를 해고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 허 국장은 “법 준수를 요구할 경우 정부가 나서서 근로자를 해고시키는 꼴이 될 수 있다”며 “그렇다고 법이 무의미한 상황도 방치할 수 없어 난처한 처지”라고 토로했다. 노동부는 3일 정확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 시의적절한 대안 수립 필요

당초 예상했던 수준의 대량 해고가 나타나지 않은 만큼 상황에 맞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노동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비정규직 실태에 관한 정확한 데이터를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 노동시장 현황에 가장 잘 맞는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노동부가 스스로 정치논리에 빠지거나 특정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도 “노동부가 기존 법안이 가져올 부작용을 국민에게 과장되게 설명했다”며 “결국 그 상황이 일어나지 않으면서 노동부가 난처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사실관계를 왜곡해선 안 된다”면서 “최근 노동부가 비정규직법 개정보다 정규직 전환에 힘을 쏟는 모습은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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