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대통령 만든 호남사람들

  • 입력 2009년 8월 18일 16시 44분


18일 서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죽음의 사선을 넘는 등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고희를 넘긴 나이에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그의 대통령에 대한 '꿈'은 호남의 '희망'과 동일시 됐고 지역민들은 30년 넘게 식을 줄 모르는 사랑과 애정을 보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가와 국민에 봉사하려는 그의 '준비된 대통령'이 밑바탕이 됐음은 자명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됐을 당시에도 그에게 있어 사실상 '킹메이커'는 없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예정된 후보였고, 후보로서 주도적으로 자신의 참모진을 독려해 전략을 세운 뒤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대선고지 등정에 성공했다.

특히 TV로 대변되는 미디어 선거는 그를 괴롭혀 왔던 '왜곡된 선입견'에서 자유롭게 해 유권자에게 다가가게 해줬고 대선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호남의 '희망'이 '꿈'을 이뤘던 또 하나의 최대 견인차는 당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의 이른바 'DJP연합'이었으며 이를 김 전 대통령 자신이 직접 이끌었다.

또 당시 조세형 총재 권한대행과 이종찬.한광옥부총재 등은 '일등공신 트로이카'로 꼽히며 참모역할을 충실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았고 아태평화재단이나 자문교수단의 외곽그룹도 큰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 선거 당시 실무진들을 보면 호남지역 인사들의 활약도 돋보인다. 철저히 준비된 기획선거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14, 16, 17대 국회의원이었던 전남 무안출신 배기선 당시 전략기획팀장이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핵심역할을 했다.

특히 방송선거 소프트웨어를 담당한 정동영 당시 대변인, 국민회의 총재비서실장을 역임했던 광주출신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도 김 전 대통령이 희망을 펼치는 데 힘을 보탰다.

대선 막판 최대쟁점이었던 경제와 북풍문제에서 김 전 대통령이 선방한데는 광주 출신 장재식 전 산업부장관과 완도출신 천용택 전 국방부장관, 광주출신 임복진 의원 등의 역할도 컸다.

나주 출신의 임채정 당시 정세분석실장도 풍부한 선거분석·기획 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승리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몸으로 돌파해내는 신안출신 한화갑, 전북 익산출신 최재승, 장흥출신 김옥두 전 의원 등 이른바 `가신(家臣)'출신 의원들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음지에서 대언론 및 정치분야 조언과 김 전 대통령에 몸을 아끼지 않은 박지원 당시 총재정치특보도 빼놓을 수 없는 공신 중 한 사람.

박광태 광주시장은 민주당, 평민당, 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으로 이어지는 동안 내내 그와 함께 했고 박준영 전남도지사는 대선 직전까지 현직 언론인으로 활약하다 당선 이후 대통령 국내 언론비서관과 공보수석 비서관 등을 지낸뒤 2001년 국정홍보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박지원 의원 등을 포함한 이들 가신그룹은 어려운 시기 그가 호남의 희망으로서 대통령이 되는데 힘을 보탰고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때에도 그의 곁을 지키며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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