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서민피해 급증

  • 입력 2009년 5월 12일 03시 03분


법률구조公 올1∼4월 접수 작년의 3배

전북 군산시에서 농사를 짓는 박모 씨(55)는 지난해 말 채소 값이 폭락해 배추밭을 갈아엎었다. 억대의 빚에 허덕이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기농법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 수천만 원을 대출받아 봄 농사를 준비하던 올해 3월 초 우체국 직원이라는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신용카드가 반송됐으니 경찰서 사이버수사대로 전화를 하라”는 내용이었다.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적이 없는 박 씨는 웬일인가 싶어 이 남자가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했다. 상대방은 “박 씨의 명의를 도용한 대포통장이 개설돼 4000만 원이 불법 이체됐다”고 답했다. 이어 “보안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박 씨에게 현금지급기를 조작하게 했고 3차례에 걸쳐 중국인 명의의 통장으로 2290만 원이 송금됐다.

얼마 뒤 영농 자금이 몽땅 빠져나간 것을 안 박 씨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신을 차린 뒤 경찰의 안내로 은행에 지급정지 신청을 했지만 돈은 대부분 다른 곳으로 빼돌려졌고, 상대방 통장에는 670만 원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 보이스피싱 사건 3배 급증

11일 경찰청에 따르면 2007년 3977건이었던 전화금융사기 건수는 지난해 8439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올해도 1분기 동안 2127건이 발생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 피해액도 2007년 434억 원에서 지난해 875억 원으로 2배 늘었다. 특히 서민의 피해가 극심하다. 서민에게 무료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법률구조공단에 접수된 보이스피싱 사건은 올해 1∼4월 모두 275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7건)의 2.8배나 된다.

경찰은 보이스피싱과의 전쟁에 나섰다. 금융감독원과 금융범죄에 대한 정보를 교류하고 상호 인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제 사기단이 위조 여권으로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인이 은행에 계좌 개설을 요청할 때 관련 기관과 자료를 공유하기로 했다.

○ 피해구제 어려워 조심하는 게 상책

보이스피싱은 중국 등 해외로 돈이 송금되고 대포통장으로 분산되기 때문에 피해 구제가 쉽지 않아 사전에 조심하는 것이 상책이다.

우선 예금보호조치 등을 명목으로 현금인출기 앞으로 가라고 유도하면 사기 전화라고 의심해야 한다. 경찰이나 관공서를 사칭할 때는 전화를 다시 걸기 전에 먼저 그 번호가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 보이스피싱을 당해 돈을 송금했다면 바로 경찰(국번 없이 1379)에 신고하고 가까운 은행이나 금감원(02-3786-8576)을 통해 ‘계좌지급정지’와 ‘개인정보노출자사고예방시스템’에 등록해 추가 피해를 막아야 한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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