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학교 ‘품질’부터 개선해야”

  • 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5분


“공교육 질이 높아지면

사교육 자연히 줄어들어

정부 접근방식에 문제”

■ 학원 규제 현장 반응

정부는 2004년과 2007년에도 대대적인 사교육경감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교육 시장은 오히려 커져만 가고 있다. 새로운 사교육경감대책을 주도하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의 곽승준 위원장은 급기야 학원 심야 교습 규제안을 꺼냈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비판적이다.

음성적인 사교육은 둘째치고라도 사교육에 접근하는 정부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 공교육의 질을 높임으로써 자연히 사교육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정석. 따라서 다음 달 발표할 정부의 사교육경감대책은 공교육 강화의 핵심인 방과 후 학교 경쟁력 확보를 위한 더 강력하고 구체적인 방안 제시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2006년 시범 도입된 방과 후 학교는 시행 3년을 넘기면서 양적으로는 팽창했다. 지난해 하반기 통계를 보면 전체 1만1114개 학교 가운데 99.9%인 1만1098개 학교가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참여 비율과 만족도를 비교해 보면 질적인 성장은 이에 못 미치고 있다. 고교생은 73.6%로 비교적 높지만 초등학생은 46.4%, 중학생은 45.4%만 방과 후 학교에 참여했다. 만족도 역시 높지 않다. 지난해 실시한 전국 설문조사에서 초등학생은 78.5%였지만 중학생은 61.6%, 고교생은 42.1%가 방과 후 학교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방과 후 학교 참여율이 높은 고교생의 만족도가 가장 낮은 것은 과거 보충수업처럼 강의를 의무적으로 듣게 하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방과 후 학교의 최대 강점은 싼 수강료다. 보습학원에서 10만 원이 훌쩍 넘는 교과 강의가 1만∼3만 원대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여전히 학원을 찾는다. 수강료 자체보다 수강료 대비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딸을 둔 박지원 씨(38·서울 동대문구)는 지난해 바이올린과 수학을 방과 후 학교로 시키면서 한 달에 4만8000원을 냈다. 지금은 바이올린 과외비와 수학 학원비로만 35만 원을 쓴다.

같은 항목인데 왜 몇 배나 비싼 학원으로 바꾸었을까? 박 씨의 대답은 명쾌하다. 방과 후 학교의 예체능 강사가 여러 학교를 돌다 보니 바이올린 강좌를 일주일에 한 번만 열었다. 악기는 자주, 꾸준히 레슨을 받아야 하는데 일주일에 2시간, 그것도 30여 명이 모여서 한 선생님에게 집단 강의를 받으니 반 년 내내 실력이 제자리걸음이었다. 수학도 같은 반 친구들과 모여서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반복하는 수준에 그쳐 아이가 지겨워했다. 학원으로 옮기니 강사들이 몇 년 치 기출문제를 구해서 족집게 강의를 하는 데다가 성적이 좋은 아이들끼리 모아놓으니 아이는 머리를 싸매고 공부했다. 방과 후 학교가 싼 수강료만 가지고 버티려고 한다면 ‘싼 게 비지떡’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박 씨의 지적이다.

방과 후 학교의 ‘품질’에 대한 불만이 계속되자 정부는 지난해 4·15 학교자율화 조치를 통해 사교육업체에 방과 후 학교를 개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사교육업체에 방과 후 학교를 맡긴 학교는 별로 없다. 수강료가 높아지는 문제와 일부 교사의 저항 등 원인은 다양하다. 사교육업체도 방과 후 학교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대규모로 강사를 양성하고 교육해 전국적으로 파견할 정도의 시스템을 갖추지 않는 이상 학교 몇 곳에 강사를 보내는 것으로는 적자를 면키 힘들기 때문이다. 반면 전국 조직력이 있는 대형 교육업체는 방과 후 학교 영어 개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방과 후 학교가 사교육 업체의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현행 방과 후 학교의 문제점을 정밀하게 진단하고 내실 있는 강화 방안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소극적인 규제 완화를 넘어서 적극적인 경쟁력 확보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 곽 위원장은 외국어고 개혁안 등을 내놨지만 이 역시 참여정부가 2007년 사교육경감대책으로 시도했다 실패한 특목고 규제를 다시 반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다음 달 발표할 예정인 사교육 경감 대책에 현장의 목소리를 얼마나 충실히 반영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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