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논리와 사고]고도의 지식-정보 재조합

  • 입력 2009년 2월 16일 02시 58분


무에서 유 만드는 예술과 달리

문제해결이 목표인 글쓰기

문제가 뭔가 원인은 무엇인가

해결책은 뭔가를 찾아내려면

기존 지식 새로운 응용 필요

누구나 창의적인 글을 쓰고 싶어 합니다. 비판적 평가의 3단계에서 기준으로 활용되는 독창성, 심층성, 다각성은 창의적인 글이 갖는 구체적 속성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엔 ‘창의성’에 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창의성에 대해 오해와 혼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술적 작업에 대해 ‘창의적’이라는 말을 씁니다.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과 같은 소설을 보면 때로는 기발하게, 때로는 엉뚱하게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펴는 작가들을 보면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미술에서도 섬뜩할 정도로 새로운 발상을 해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남성용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서 전람회에 전시함으로써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현대의 위대한 조각가 마르셀 뒤샹도 그 중 한 사람일 것입니다.

이처럼 문학이나 예술에서의 창의성은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능력입니다. 보통 우리가 ’창의적 발상‘이라 부를 때의 창의성입니다. 이런 예술가들 때문에 흔히 창의성은 발산적 사고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는 발산적 창의성은 창의성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논술의 고수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창의성은 이러한 예술적 창의성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논술은 본질적으로 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전형적인 논술은 문제 해결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문제의 원인을 밝혀내 설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새롭게 제기된 것일 경우 이전의 설명이나 해결책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때 창의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창의성은 기발하고 엉뚱한 것을 상상해 내는 창의성이 아니라 이미 가진 지식과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고 응용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고도의 응용능력, 활용 능력을 가리킵니다.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화하다보니 기존 지식이 갖는 유효기간이 갈수록 짧아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롭게 제기된 문제에 대해 기존의 지식이 무력한 경우를 흔히 접하게 됩니다. 특히 첨단 지식일수록 첨단의 위치에 머무는 기간은 점점 짧아져서 빨리 약효가 떨어지게 됩니다.

이런 현실 때문에 대학에서 어떤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배우고도 사회에 나가 그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기간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새롭게 제기된 문제를 기존의 지식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상황, 이것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맞게 되는 상황입니다.

돌파구는 둘입니다. 하나는 새로운 문제에 적합한 새로운 지식을 발 빠르게 흡수해 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방법은 한계가 뚜렷합니다. 우선 적합한 새로운 지식이 계속 공급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또 그런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학습 능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항상 흡수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또 다른 돌파구는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 기존의 지식과 새로운 문제 사이의 격차를 스스로 뛰어 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가진 정보를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재조합하여 새롭게 응용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바로 논술에서 말하는 창의성,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은 바로 이것입니다.

단순히 생각을 떠 올리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문제를 겨냥한다는 점에서 ‘수렴적 창의성’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논술 문제는 제시문과 함께 그와는 맥락이 좀 다른 문제를 주고 제시문의 내용을 활용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게 합니다. 바로 수렴적 창의성을 평가해 보려는 전형적인 문제 형식입니다.

발산적 창의성은 가능한 한 새로운 대안을 많이 생각해 내려고 노력할 뿐 그 대안들이 현실에 꼭 맞고 합리적인 대안인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둔감합니다. 그러나 수렴적 창의성은 합리적이고 적합한 대안을 찾는 데 모든 관심을 쏟습니다.

발산적 창의성은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해 비약이 일어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오히려 환영합니다. 하지만 수렴적 창의성은 합리성의 틀 안에서 논리적 절차를 밟아 나가서 가장 훌륭한 대안을 찾으려고 합니다.

수년 전에 인기를 끌었던 한 드라마의 주인공인 ‘맥가이버’라는 인물이 논술이 평가하는 수렴적 창의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맥가이버는 문제에 부딪히면 일상적이고 평범한 방법으로 해결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평범한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종의 뛰어난 화학자입니다. 주위 물건의 성질을 무엇이든 응용하고 활용해서 일상적이지 않은 특별한 방법으로 문제 상황을 돌파해갑니다. 문이 잠겨있지만 열쇠가 없는 상황은 맥가이버가 일상적으로 부딪히는 문제입니다. 그는 칼이든 철사든 자신이 가진 도구를 활용해 문을 열고야 맙니다. 맥가이버의 창의성은 바로 응용 능력, 활용 능력입니다.

논술이 평가하는 수렴적 창의성을 다르게 개념화한 것이 바로 ‘영역전이성’이라는 개념입니다. 한 영역에서 얻은 지식을 그와는 맥락이 다른 영역에 적용하고 활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영역전이에는 유사한 영역 안에서 이루어지는 가까운 영역전이도 있고, 관련성이 없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활용하는 먼 영역전이도 있습니다.

화학에서 얻은 지식을 생물학에 적용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가까운 영역전이지만 화학에서 배운 지식을 인문학에 활용하는 것은 먼 영역전이가 될 것입니다. 결국 창의적 문제 해결의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영역전이적 활동을 자주 해봐야 합니다. 영역전이성은 달리 보면 이질적인 것을 종합하는 능력입니다. 이질성의 종합은 새로운 해결책이 끌어내는 주요 토대가 됩니다.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 의사소통교육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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