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울의 논두렁 스케이트장

  • 입력 2009년 1월 23일 02시 58분


논에 물을 얼려 만든 서울 강서구 발산동 발산 스케이트장. 22일 오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변영욱 기자
논에 물을 얼려 만든 서울 강서구 발산동 발산 스케이트장. 22일 오전 어린이들이 즐겁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변영욱 기자
아이는 얼음 위 달리고… 어른은 추억속 달리고

발산동 두 곳 인기… 마니아들 “빙질 나빠 오히려 실력 늘어”

서울 강서구 발산동의 발산 스케이트장과 호돌이 스케이트장은 여느 스케이트장과 다르다.

두 곳은 추수가 끝난 논에 물을 얼려 운영하는 일명 ‘논두렁 스케이트장’. 향수를 느끼며 빙판을 지칠 수 있는 이곳은 겨울철마다 매서운 바람을 맞아가며 어린시절을 추억하는 중장년층과 그 자녀들이 몰려들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논두렁 스케이트장에는 신발을 신고 들어가도 된다. 어린 자녀의 썰매를 끌어주려는 아빠에게 적용되는 이 혜택은 논두렁 스케이트장의 첫 번째 매력 포인트다.

6600m² 규모로 적지 않은 크기에다 얼음 두께가 15cm 이상이다. 빙질은 실내 빙상장보다 나쁘지만 스케이팅 마니아들에게는 오히려 이게 장점이라고 한다.

6년째 이곳 단골이라는 노주원(43) 씨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기 연습을 하다 떼어 놓고 실전에 나가면 기록이 좋아지듯, 빙질이 좋지 않은 이곳에서 스케이트를 배우면 어디에서건 우수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웃었다.

시간제한도 없어 일단 입장하면 해가 질 때까지 타도 된다. 입장료는 2000원.

대부분의 실내 빙상장에서 대여 스케이트로 다소 질이 낮은 피겨용을 비치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중상급 이상의 품질을 갖춘 스피드용 스케이트를 빌려 준다. 대여비는 2000원으로 저렴하다.

스케이트 끈을 제대로 매지 못하면 자원봉사로 이곳에 나오는 할아버지들이 도와주기도 해 정겹다.

실내 빙상장의 정빙차량 역할은 싸리비와 바가지가 대신한다. 영업이 끝나면 싸리비로 얼음판을 깨끗이 쓸어낸 뒤 바가지에 물을 떠 골고루 뿌려주는 전통의 빙질 관리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발산 스케이트장을 20여 년 동안 운영 중인 전무신(60) 사장은 “여기서 놀며 큰 사람들이 아이들 손을 잡고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며 “예전에는 아이들끼리 왔지만 요새는 스케이트를 타는 어린이 1명에 따라오는 보호자가 서넛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이곳을 처음 찾는 사람이라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느냐”며 금세 단골이 된다고 한다.

평일에는 200여 명이 찾아오고 주말에는 500여 명 선.

아이들 타는 것만 보며 즐거워하는 부모들을 위해서는 장작 때는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줘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준다.

또 다른 스케이트장인 호돌이 스케이트장은 1988년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호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발산동의 논두렁 스케이트장들은 곧 문을 닫을 처지에 있다. 이 일대가 택지로 개발되기 때문이다. 발산 스케이트장은 올해 12월 강서구 개화동으로 옮겨갈 예정이다. 호돌이 스케이트장은 어디로 옮길지 미정이다.

지하철 5호선 발산역 7번 출구로 나와 걸어서 3분 거리다. 스케이트장 옆 넓은 논이 주차장인 셈이니 마음 놓고 자가용을 가져가도 된다. 문의 발산 스케이트장(02-2665-8860), 호돌이 스케이트장(02-2665-9440)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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