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어선 검문 불응하고 폭력… 해경 1명 숨져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1분


배 오르려다 쇠파이프 저항에 밀려 떨어져

사건 18시간 뒤 목에 줄 감겨 숨진채로 발견

경찰 “타살 배제 못해”… 어선은 추격 끝 나포

“3년전도 사투… 바다 지키려면 목숨 걸어야”

한국 측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불법 조업 중인 중국 어선에 승선하려던 해양경찰관이 쇠파이프 등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저항하던 중국인 선원들에게 밀리면서 바다에 빠져 숨졌다.

전남 목포해양경찰서는 26일 오후 1시 10분쯤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해상에서 전날 실종된 박경조(48·사진) 경사가 숨진 채 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불법 중국어선 나포작전은 평소에도 전쟁을 방불케 한다. 해경은 높은 파도를 헤치며 해상 추격전을 벌이는가 하면 흉기를 들고 대항하는 ‘바다의 무법자’에게 맞서 사투를 벌이는 일이 다반사다.

▽저항하는 선원에게 밀려 바다로 떨어져=25일 오후 7시 반경 한국 측 EEZ인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 서쪽 70km 해상. 목포해경 소속 3000t급 3003경비함 레이더에 배의 이름이 확인되지 않은 50t급 중국어선 2척이 포착됐다.

함장인 김도수(48) 경정은 망원경으로 선체를 살펴보다 배의 이름을 지운 채 조업하고 있는 어선을 나포하기 위해 리브보트(고속단정) 2척을 급파했다.

보트에는 17명의 경찰관이 나눠 승선했다. 이들은 함정에서 300여 m 떨어진 곳에서 조업 중이던 중국어선에 정지 명령을 내렸다. 1척이 중국 쪽으로 달아나자 대원들은 나머지 1척을 보트로 가로막고 옆에 바짝 붙였다.

박경조 경사 등 3명이 어선에 오르려 하자 중국인 선원 10여 명이 갑자기 쇠파이프와 삽을 휘두르고 빈 병과 어구를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박 경사 등은 가스총과 3단봉으로 이들을 제압하려고 했지만 거세게 저항하는 선원들에게 밀려 박 경사는 바다에 빠졌고 이모(28) 순경 등 2명은 보트에 떨어졌다.

일부 대원이 박 경사를 찾는 동안 중국 어선은 도주했다. 박 경사는 실종 18시간 만인 26일 오후 1시 10분경 실종 지점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해상에서 구명동의를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해경은 이날 오전 10시 반경 신안군 흑산면 홍도 서쪽 200km 해상에서 달아나던 중국 어선을 나포해 선원 11명을 목포항으로 압송한 뒤 조사하고 있으며 혐의가 확인되는 선원은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 등을 적용해 긴급 체포할 방침이다.

해경 관계자는 “검시 결과 박 경사의 목에 허리띠와 경찰봉을 연결하는 줄이 감겨 있었다”며 “박 경사가 중국인 선원들이 휘두른 흉기에 맞아 타살됐을 가능성과 목에 줄이 감긴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27일 시신을 부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순직한 박 경사는 1990년 임용돼 파출소와 함정을 오가며 근무하다 3003경비함에는 올해 3월 부임해 무기를 관리하는 병기장을 맡고 있었다. 박 경사는 불법 조업 어선 나포와 관련한 공적으로 해양경찰청장상을 받는 등 네 차례나 표창을 받았다. 동료 경찰관들은 “평소 묵묵히 일하면서도 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 인망이 높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박 경사의 시신은 헬기로 운구돼 목포 한국병원에 안치됐으며 29일 서해지방경찰청장(葬)으로 영결식을 치른 뒤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해경은 박 경사에게 1계급 특진을 추서하기로 했다.

▽중국 어선과 목숨 건 전쟁=불법 중국어선을 단속하는 해양경찰관들은 목숨을 걸고 피 말리는 나포작전을 벌인다. 3년 전에도 해양경찰관 4명이 한국 측 EEZ에서 중국어선을 나포하려다 중국인 선원들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중상을 입은 적이 있다.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500t급 경비함 501호는 5월 24일 오전 1시 반경 인천 옹진군 백령도 서쪽 43km 해상에서 중국어선 2척이 EEZ를 침범한 사실을 확인해 나포작전에 나섰다.

경찰관과 전경 12명은 고속단정을 타고 중국 어선에 접근해 각 어선에 6명씩 올라 어선 1척을 제압했으나 다른 어선에 타고 있던 중국인 선원 18명은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단속 해경에게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팀장인 최모(47) 경사가 쇠파이프에 얼굴 왼쪽을 정통으로 맞아 쓰러졌고 중국인 선원들은 최 경사를 바다에 던져 버렸다. 나머지 대원들은 팀장을 구하기 위해 모두 바다로 뛰어들었고 중국어선 2척은 이 틈을 타 도주하다 나포됐다.

중국 어선의 ‘싹쓸이식’ 조업은 사라졌지만 야간 등 취약시간에 무허가 선박의 조업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중국인 선원들이 흉기를 휘두르며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은 무허가 조업으로 나포될 경우 물어야 하는 수천만 원의 벌금 때문이다.

목포해경 1509함 소속 경찰관은 “가스총, 3단봉, 전기충격기 등 장비를 갖추고 검문검색을 하지만 해상에서 이들을 제압하기가 쉽지 않다”며 “이들이 생사를 걸고 저항할 때면 온몸이 오싹해지며 생명에 위협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고 말했다.

목포=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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