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시절 사법 책무 다하지 못해… 국민께 죄송”

  • 입력 2008년 9월 27일 03시 01분


26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26일 이용훈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헌법가치 어긋난 판결도”

이용훈 대법원장 ‘사법부 불행한 과거’ 사과

이용훈 대법원장이 26일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사법부의 불행한 과거’에 대해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이 대법원장은 이날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강당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지난 60년의 자취를 돌아보면 자랑할 만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며 “권위주의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법관이 올곧은 자세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기본권과 법치질서 수호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 결과 헌법의 기본적 가치나 절차적 정의에 맞지 않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했다”면서 “대법원장으로서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법원장의 ‘사법부 과거사 사과’는 2005년 9월 26일 대법원장 취임사를 통해 ‘사법부 과거사 반성’의 뜻을 밝힌 지 정확하게 3년 만이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이 대법원장은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고치는 구체적 작업은 사법권의 독립이나 법적 안정성 같은 다른 헌법적 가치와 균형을 맞춰 추진해야 한다”고 전제하면서 과거의 잘못된 재판은 재심 절차를 거쳐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법원장은 그 사례로 그동안 법원에서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이 난 △민족일보 사건 △인혁당 재건위 사건 △민청학련 사건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사건 등을 거론했다.

대법원은 과거사 사과의 일환으로 올해 말까지 유신 및 긴급조치, 전두환 정부 시절의 시국·공안사건 가운데 불법구금과 고문 등 재심 사유가 있는 사건 224건을 정리해 ‘역사 속의 우리 사법부’(가칭)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사법의 포퓰리즘은 경계해야 한다. 국민의 신뢰는 인기와 여론이 아니라 오직 정의와 양심의 소리에서 나오는 것이다”면서 “정부는 법과 제도의 투명성은 높이고, 낡고 편향된 법 제도는 신속히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서 고 조진만 전 대법원장과 박병호 전 서울대 교수(이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권오곤 유엔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노영보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이상 국민훈장 모란장), 황찬현 서울고법 부장판사(황조근정훈장)에게 훈장이 수여됐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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