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여론광장/근대사의 보물창고 배다리가 무너진다

  • 입력 2008년 7월 4일 06시 48분


경인전철 동인천역 인근의 배다리는 송현동 갯골 수로를 통해 배가 드나들었던 곳으로, 인천 근대교육의 요람이었다.

배다리에 있는 한국 최초의 사립초등학교인 영화학교는 미 북감리회 조원시(존스) 선교사 부부가 1892년 4월에 세운 매일학교를 모태로 하여 발전한 초등교육기관이다.

김활란 박사를 비롯해 김애리시, 서은숙, 김애마, 김영의 등 한국 여성사에 이름을 빛낸 이들이 영화학교 출신이다.

1907년 인천 최초의 공립초등교육기관인 인천공립보통학교(현재의 창영초등학교)도 배다리에서 문을 열었다.

한국 고고미술사학의 개척자인 우현 고유섭 선생을 비롯하여 조진만, 신태환, 김은하, 함세덕, 김동석 선생 등 여러 문화인과 정치가가 이 학교를 나왔다.

영화학교 본관동과 인천공립보통학교 본관 교사 건물은 인천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상태다.

배다리 일대는 한국 기독교 선교의 시발지였다.

1897년 조원시 선교사는 한국 서지방(인천, 강화, 남양, 황해도 연안 등) 선교를 위해 이곳에 선교기지인 에즈베리 목사관을 건축했다. 인근 우각리 40, 42 일대에는 남녀 선교사 기숙사까지 세워 한국 기독교를 확산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1900년 한국 최초의 신학 월간지로 창간된 ‘신학월보’가 발행된 곳도 바로 배다리였다.

배다리 지역에서는 한국 최초의 근대철도인 경인철도 기공식이 1897년 3월에 열리기도 했다.

인천의 근대 공업사를 상징하는 인천성냥공장이 위치했던 곳이며, 개항장으로부터 밀려난 조선의 서민들이 배다리시장을 중심으로 모여 살면서 근대생활사의 풍부한 스토리텔링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1950년대 이후 인천문화의 보고로 자리했던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명성이 알려져 있다.

그런데 배다리 일대가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인천시가 배다리 지역을 관통하는 산업도로 공사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기술적인 결함까지 무릅쓰고 강행되고 있는 배다리 산업도로 문제는 인천시의 문화적 마인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차제에 발상을 전환하여 배다리 일대를 인천의 대표적인 역사문화지구로 보존해야 한다.

이희환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lhh4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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