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통계로 세상읽기]새로운 가족, 애완동물

  • 입력 2008년 3월 31일 02시 57분


《요즘 개와 함께 산책시키거나 개에게 이름을 붙여 가족처럼 대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애완동물을 다루는 TV 프로그램도 여러 개 생겨났다. 가족 구성원의 수가 많았던 예전에는 애완동물을 집에서 같이 사는 동물 정도로만 여겼다. 키우는 동물의 종류도 개나 고양이 정도로 단순했다.》

정이 메마른 현대사회… 사람을 대신하는 애완동물

애완견 관련사업 시장만 年2조원 규모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각 가정의 구성원 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애완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애정도 깊어지고 있다. 애완동물의 종류도 다양해져 구관조 십자매 카나리아 앵무새 등 조류는 물론이고 거북 이구아나 뱀 등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도 꽤 많아졌다.

어린이들도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03년 한 어린이 전문 TV 채널은 ‘어린이날 꼭 갖고 싶은 선물’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휴대전화 게임기 컴퓨터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모두 제치고 애완동물이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어린이 5명 가운데 1명꼴로 애완동물을 골랐다. 2005년 한 어린이 포털사이트의 조사에서도 5명 가운데 2명이 어린이 날 선물로 애완동물을 받고 싶다고 응답했다.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많이 기르고, 어린이들이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현상은 사람들 사이에 점점 정이 메말라 가는 풍조를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인간은 말을 못하는 동물에게서 정을 얻어 위안을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애완동물과 관련된 소비지출이 늘어나고, 관련 사업도 번창하고 있다. 국내의 애완견은 자그마치 120여 종에 300만 마리 이상이라고 한다. 애완견 1마리를 제대로 키우는 데 연간 4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하니, 애완견 관련 사업의 시장 규모만도 연간 2조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애완동물까지 고려하면 애완동물 관련 시장 규모는 엄청나다.

도대체 어디에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 걸까? 간식을 포함한 사료비용이 애완견을 키우는 데 들어가는 전체 비용의 50%를 차지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애완견에게 정기적으로 미용을 해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수요가 늘어나자 애견 미용사를 배출하는 학원도 전국에 40여 곳 이상으로 늘어났다. 3000여 개나 되는 애견센터에서도 애견 미용을 겸하고 있다. 이쯤 되니 애견 미용사가 미래의 유망 직종으로 꼽힐 정도다. ‘웬만한 사람보다 나은 대접을 받는다’고 비꼬는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이다.

이런 호화로운 대접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애완동물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상팔자’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이가 애완동물의 특성과 생활 습관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충동적으로 애완동물을 사서 기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죽는 애완동물도 적지 않다. 정을 주고 기르던 애완동물이 늙거나 병들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내버리는 사람도 있다. 한 해 동안 서울 시내에서 버려진 애완동물만도 3000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애완동물이 많아지고 관련 사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애완동물과 관련한 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은 셈이다.

버려진 개 파트라슈와 네로의 사랑을 그린 이야기 ‘플랜더스의 개’처럼 인간이 동물과 따뜻한 정을 나누는 사례는 실제로도 많이 있다. 애완동물을 키우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많지만 가족, 친구에게 하듯 따뜻한 사랑을 가지고 대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애완동물을 ‘인간과 더불어 사는 동물’이라는 의미에서 ‘반려동물(伴侶動物)’로 부르자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애완동물이냐 반려동물이냐 하는 명칭의 문제가 아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유기견이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한 이 시점에, 동물인 그들도 우리와 동일한 생명체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애완동물을 사랑하고 가족처럼 여기는 것은 좋지만, 애완동물 때문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줄어든다면 그것도 잘못된 일이다. 애완동물에게 베풀 애정은 베풀면서도, 인간과 나눌 애정은 인간과 나누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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