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우리동네 작은 외국]<7>혜화성당 ‘미니 마닐라’

  • 입력 2007년 10월 15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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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간당 하폰(안녕하세요).” “할리카 디토(어서 오세요).”

14일 오후 2시 반 서울 종로구 혜화동 혜화성당 앞.

길옆에 늘어선 노점상들은 생소한 필리핀말(타갈로그어)로 인사를 건넸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은 줄잡아 1200여 명. 대부분 필리핀인인 이들이 길거리에서 음식을 먹고, 얘기를 나누며 성당 앞은 필리핀인들의 장터로 바뀌었다. 혜화성당 앞에서 동성고등학교까지의 거리는 50m 남짓. 일요일마다 ‘작은 마닐라’로 변신하는 이곳은 필리핀의 맛과 문화가 어우러져 그들의 향수를 달래 준다.

○ 타갈로그어 미사에 몰리는 필리핀 사람들

일요일에 미사를 보기 위해 혜화성당을 찾는 필리핀 사람은 최대 2000여 명에 이른다. 필리핀인들이 이곳에 몰리기 시작한 것은 1992년 혜화성당에서 필리핀인 신부가 미사를 집전하면서부터. 필리핀은 국민의 80% 이상이 가톨릭을 믿는 나라로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 사람도 역시 천주교 신자가 많다.

자국어로 미사를 볼 수 있게 된 필리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혜화성당 앞에는 일요일마다 장이 서게 됐다. 혜화성당의 필리핀인 신부 장 글렌 씨는 “필리핀 사람들이 고국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하게 미사를 드리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한국인들도 찾는 필리핀 음식

이날 오전 10시부터 혜화성당 앞에는 필리핀 상인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자리를 깔고 생필품을 팔거나 탁자 두어 개를 둔 노점들이 20여 곳.

오후 2시 반 미사가 끝난 뒤 가장 붐빈 곳은 음식을 파는 노점. ‘랑구미사’라는 필리핀 전통 소시지, 쇠고기 볶음밥과 비슷한 ‘보피스’, 쌀국수인 ‘판싯’ 등이 인기 메뉴다.

이곳을 찾은 최진홍(43) 씨는 “필리핀 여행 때 맛있게 먹었던 생각이 나 가끔 이곳을 찾아 쌀국수를 먹는다”며 “향이 강하지 않은 담백한 맛”이라고 소개했다.

노점상의 좌판에는 필리핀제 음악CD, 정어리 통조림 등이 놓여 있었다. ‘탕콩’ ‘오크라’ ‘암팔라야’ 등 필리핀 특유의 야채와 ‘필라피아’ 등 냉동 생선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노점상에 들른 여대생 김지선(23) 씨는 “마닐라에서 마셨던 ‘산미구엘 맥주’가 생각나 이곳을 찾았다”며 2500원을 내고 한 병을 사가기도 했다.

○ “필리핀 풍물거리 됐으면”

이곳은 노점상이 많다 보니 가끔 해당 구청의 단속반원과 마찰이 빚어진다. 인근 주민들도 소음과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필리핀인 노점상인 페드로(38) 씨는 “일주일에 한 번뿐이고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니 혜화성당 앞을 필리핀 풍물거리로 양성화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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