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7주년]‘선진헌법’ 국민 합의에만 최소 2년 필요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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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다음 달 발의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다음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어 현 정부 임기 안에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 대신 이명박 전 서울시장,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주요 대선주자들은 집권하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의견을 밝힘에 따라 차기 정부에서는 개헌이 중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1948년 헌법 제정 이래 9차례 개정을 했지만 각각의 개정에 걸린 시간은 몇 개월에 불과했다. 권위주의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또는 정치인들의 정략적 나눠 먹기식 개헌이었기 때문이다. 내용도 권력구조 변화에 집중했다.

헌법학자들은 이제 충분한 논의와 토론,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통한 포괄적, 전면적 개헌을 준비할 때라고 주장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을 별도로 하더라도 개헌은 필요하다”며 “개헌에 대해 상충하는 의견을 조율하고 다수 국민이 합의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에 대한 ‘임기 내 개헌 반대’ 여론이 높은 것도 국민의 공감대를 얻기 위한 충분한 논의 과정이 배제됐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개헌은 국회와 대통령 모두 발의할 수 있지만 민의가 반영되는 국회가 논의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데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공감한다.

성낙인 서울대 법대 교수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헌법연구조사위원회 같은 특위를 만들어 전 세계 헌법을 연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이 특위에는 의원뿐만 아니라 전문가, 학계, 시민단체 등이 함께 참여해 개헌 논의가 정치인들의 정치적 타협으로 이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헌법학자들은 개헌에서 다룰 핵심 쟁점은 10개 안팎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토조항, 토지공개념, 국민소환제같이 계층 또는 지역 간 국론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쟁점도 있기 때문에 논의의 절차적 공정성과 투명성이 매우 중요하다.

국민 대토론이나 언론을 통한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한 이유다. 또한 논의 과정에서는 각 조항의 장단점이 가감 없이 제시돼야 한다. 내용의 정당성은 헌법 자체의 정당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헌법학자들은 2008년 4월 총선 이후 1년가량은 국정운영의 틀을 잡고 임기 2년차 정도에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본다.

국회에 설치된 헌법조사연구위원회가 전 세계 헌법 및 개정 과정을 연구해 정리하고 사회적으로는 헌법의 쟁점 조항을 하나씩 정리해 나간다면 국민적 합의를 얻기까지 최소 2년 정도가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장 교수는 “쟁점과 관련해 각계각층에서 고칠 부분이 제시되면 국회 공청회나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통해 심층적인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을 어느 시한까지 이뤄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불필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황승흠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개헌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며 “개헌보다 개헌 논의 준비가 더 중요한 까닭이 여기 있다”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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