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철이가 올린 작은 깃발 가슴속에 간직해줬으면”

  • 입력 2007년 1월 15일 02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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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보안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박종철 씨 20주기 추모식 및 6월 민주항쟁 20주년 사업 선포식에서 박 씨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비통한 표정으로 고문 현장이었던 509호 조사실의 박 씨 영정에 흰 국화꽃을 바치고 있다. 이훈구  기자
14일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옛 치안본부 대공보안분실(현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열린 박종철 씨 20주기 추모식 및 6월 민주항쟁 20주년 사업 선포식에서 박 씨의 아버지 박정기 씨가 비통한 표정으로 고문 현장이었던 509호 조사실의 박 씨 영정에 흰 국화꽃을 바치고 있다. 이훈구 기자
1987년 1월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지면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당시 21세·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씨의 20주기 추모식이 14일 사건 현장인 서울 용산구 남영동의 옛 치안본부 대공보안분실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6월 민주항쟁 20주년 사업추진회’ 주최로 열린 추모식에는 박 씨의 아버지 박정기(78) 씨와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등 정치권 인사와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500여 명이 참석했다.

대공분실 건물 앞뜰에서 추모식이 시작되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7층짜리 대공분실 건물 앞쪽 4층까지를 뒤덮었던 검은색 천이 걷히고 박 씨의 얼굴이 담긴 대형 걸개그림이 나타났다.

박중기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의장은 추모사에서 “그는 ‘참민주’를 위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군사정권의 고문과 싸웠다”며 “살아 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작은 변화가 참민주를 위해 싸운 열사들의 피로 쟁취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박 씨가 경찰의 고문에도 끝까지 행방을 함구했던, 수배 중이던 대학 선배 박종운(47) 씨는 “20주기를 맞아 당시 독재 타도를 위해 싸웠던 정신이 지금 세대에게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도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은 욕조와 수도꼭지, 침대 등 당시 물고문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509호 조사실로 올라가 일일이 헌화하며 그날의 아픈 기억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기를 빌었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추모식 내내 눈시울을 적셨던 박정기 씨는 “그가 죽어서 투혼과 열정을 의미하는 깃발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20년이 지난 지금 모든 국민이 작은 깃발이나마 가슴속에 간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종철 씨의 모교인 부산 혜광고에서도 13일 오후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는 박정기 씨와 고교 동문, 시민단체 회원, 박 씨의 은사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묵념, 추도사, 유족 대표 인사, 추모 공연 및 강연회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고교 및 대학 친구인 김치하(43) 씨는 추도사에서 “친구의 죽음이 우리 역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종철이는 민주화를 위해 산화했을 뿐 우리의 가슴에 살아 있다”고 말했다.

박정기 씨는 인사말에서 “종철이가 떠났을 때 우리 가족은 하늘이 두 쪽이 나고 땅이 꺼지는 아픔을 겪었지만 여러분이 보내 준 따뜻한 마음 덕분에 이렇게 살고 있다”며 “종철이가 3년간 뛰어놀던 교정에서 추모제가 열려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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