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대공분실서 열린 박종철 고문치사 20주기 추모식

  • 입력 2007년 1월 14일 17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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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서울대 재학중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지면서 6월항쟁을 촉발시킨 고(故) 박종철 열사의 20주기 추모제가 14일 오후 박씨가 숨진 남영동 분실에서 열렸다. 추모제에서 박씨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숨진 장소에 헌화한 뒤 욕조의 물을 틀어 잠시동안 바라보고 있다. 이훈구기자
1987년 서울대 재학중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지면서 6월항쟁을 촉발시킨 고(故) 박종철 열사의 20주기 추모제가 14일 오후 박씨가 숨진 남영동 분실에서 열렸다. 추모제에서 박씨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숨진 장소에 헌화한 뒤 욕조의 물을 틀어 잠시동안 바라보고 있다. 이훈구기자
1987년 1월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지면서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던 박종철(당시 21세·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씨의 20주기 추모식이 14일 사건 현장인 서울 용산구 남영동의 옛 치안본부 대공보안분실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 '6월민주항쟁 20주년사업추진회' 주최로 열린 추모식에는 박 씨의 아버지 박정기(78) 씨와 열린우리당 이부영 전 의장,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 등 정치권 인사와 최열 환경재단 대표, 이해인 수녀 등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500여 명이 참석했다.

대공분실 건물 앞뜰에서 추모식이 시작되자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며 7층 짜리 대공분실 건물 앞면 4층까지 뒤덮었던 검은색 천이 걷히고 박종철 씨의 얼굴이 담긴 대형 걸개 그림이 나타났다.

박중기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의장은 추모사에서 "그는 참민주를 위해 목숨을 던지면서까지 군사정권의 고문과 싸웠다"며 "살아있는 사람들은 현재의 작은 변화가 참민주를 위해 싸운 열사들의 피로 쟁취됐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씨가 목숨을 걸며 지킨 대학 선배였던 박종운(47) 씨는 "1989년부터 매년 추모식에 참석해 왔다"며 "20주기를 맞아 당시 독재타도를 위해 싸웠던 정신이 지금의 세대에게도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추도식이 끝난 뒤 욕조와 수도꼭지, 침대 등 당시의 물고문 현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509호 조사실로 올라가 일일이 헌화하며 그날의 아픈 기억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빌었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추모식 내내 눈시울을 적셨던 박정기 씨는 "그가 죽어서 투혼과 열정을 의미하는 깃발이 됐다고 생각한다"며 "20년이 지난 지금 모든 국민이 작은 깃발이나마 가슴 속에 간직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 씨의 모교인 부산 혜광고에서도 13일 오후 20주기 추모제가 열렸다.

추모제는 박정기 씨와 고교 동문, 시민단체 회원, 박종철 씨의 은사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묵념, 추도사, 유족 대표 인사, 추모공연과 강연회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고교 및 대학 친구인 김치하(43) 씨는 추도사에서 "친구의 죽음이 우리 역사에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종철이는 민주화를 위해 산화했을 뿐 우리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고 말했다.

부친 박 씨는 인사말에서 "종철이가 떠났을 때 우리 가족은 하늘이 두 쪽 나고 땅이 꺼지는 아픔을 겼었지만 여러분들이 보내 준 따뜻한 마음 덕분에 이렇게 살고 있다"며 "종철이가 3년간 뛰어놀던 교정에서 추모제가 열려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동욱기자 creating@donga.com

부산=윤희각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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