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의 푸르른 하늘에 한 맺힌 외침이 퍼져 나갔다. 비취색 바다는 60여 년 전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전쟁은 이미 잊은 듯 고요했다.
12일 오전 사이판의 태평양한국인추념평화탑 앞에서는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이곳에서 부모 형제를 잃은 20명의 유족 목소리가 남국의 바람을 타고 울려 퍼졌다.
“60년간 숨죽여 불러보던 아버지의 이름을 이제야 마음 편하게 불러 봐. 내 마음에 남아 있던 한(恨)도 날아가는 느낌이야.”》
1944년 마리아나 제도의 콰절린 섬의 육상전투에서 사망한 권정술 씨의 딸인 권영정(62) 씨는 아버지의 영정을 꽉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평화탑 앞에는 위령제를 위해 유족들이 가져온 영정이 놓여 있었다. 사진을 가지고 온 세 명의 유족을 제외하고 다른 유족들은 아버지의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태평양전쟁 당시 사이판과 마리아나 제도 등지에서 숨진 한국인 강제동원자의 유족이 피붙이가 사망한 곳을 정부의 주도하에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전기호)는 사이판, 팔라우, 필리핀 등 해외에서 사망한 한국인 강제동원자 유족을 대상으로 당시 사망지를 직접 방문하는 사업을 올해 처음으로 실시했다.
이번 1차 해외추도순례사업은 진상규명위에서 접수된 피해신고서와 강제동원된 사실이 확인된 유족들 가운데 총 60명을 추첨으로 선발해 11일부터 세 곳을 20명씩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사이판과 마리아나 제도는 태평양전쟁 당시 전략적 요충지로 일본군이 수많은 한국인을 군속으로 강제동원했다.
1944년 미군이 일본군을 괴멸시키는 과정에서 전쟁에 강제로 내몰리거나 대피를 미처 하지 못해 사망한 한국인은 수천 명에 이른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1971년에 작성한 구일본군재적조선출신사망자연명부에 따르면 사이판 1101명, 트럭 섬 484명, 마리아나 335명 등 많은 한국인이 머나먼 이국에서 사망했다.
4박 5일간 진행된 사이판 추도순례는 사이판에 위치한 태평양한국인추념평화탑에서 위령제를 지내는 것을 시작으로 일본 정부가 유골 수집을 한 장소와 티니안에 위치한 한국인 위령비 등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위령제는 한국에서 가져온 삼베옷을 입은 유족들이 추도사와 제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했다.
“아버지, 아들딸들이 왔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싶어서 왔습니다. 60년이 넘어서야 찾아온 저희를 용서하세요.”
한 유족의 건의에 묵념을 끝내고 아버지와 형제의 이름을 부르는 시간에는 유족들의 외침이 끝날 줄 몰랐다.
1944년 형이 남태평양 해상에서 선박침몰로 사망한 염덕용(78) 씨는 위령제를 마치고 모래를 조심스럽게 퍼 봉투에 담았다. “어머니가 묻힌 산소에 이 모래를 묻을 겁니다.”
사이판=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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