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아버지…” 제임스 김 끝내 싸늘한 시신으로

  • 입력 2006년 12월 8일 02시 56분


코멘트
“오후 1시까지는 꼭 돌아올게.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2일 아침 미국 오리건 주 남부의 폭설로 막힌 산악 도로에 일주일째 갇혀 있던 제임스 김(35) 씨가 부인 캐티(30) 씨와 두 딸 퍼넬러피(4), 서빈(7개월) 양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김 씨는 구조대를 부르기 위해 가족을 차에 남겨 두고 길을 떠났다. 청바지 위에 바지 하나를 더 껴입었지만 장비라고는 손전등과 라이터 2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6일 겨우 1.6km 떨어진 로그 강가의 계곡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발견됐다. 20∼30cm의 눈에 덮인 채 동사한 상태였다. 남았던 가족은 4일 극적으로 구조된 뒤였다.

▶본보 12월 7일자 A31면 참조
휴대전화여 父情을 전해다오

샌프란시스코의 정보기술(IT) 전문 웹진인 CNET의 수석편집자였던 김 씨는 자기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가였다. 그는 새로운 디지털 기기들을 소개하는 동영상 뉴스 ‘브레이크 가젯 블로그’를 통해 편안한 인상과 친절한 말투로 세계 누리꾼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김 씨는 가족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아버지였다. 특히 위험에 빠진 가족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다.

구조대를 이끌었던 조세핀카운티 경찰서의 조엘 헬러 경사는 7일 본보와의 전화 회견에서 “김 씨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초인적인 노력을 펼친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그가 대처한 방법은 매우 훌륭했다”며 그를 추모했다.

헬러 경사는 “김 씨 가족이 조난한 지역은 해발 1800m로 한국의 깊은 산악지역과 비슷할 것”이라며 “김 씨는 연료를 아끼기 위해 밤에만 엔진을 켜고 비상타이어를 태우며 동물들의 흔적을 따라 산딸기를 구하는 등 뛰어난 위기 대응능력을 보였다”고 말했다.

구조대는 김 씨가 내려간 계곡이 일 년 내내 안개가 짙게 끼고 수영하다시피 해서 물을 건너야 하는 험난한 지형으로 김 씨가 결국 더는 나아갈 수 없는 지점에서 돌아가려 했지만 탈진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 씨의 사망 소식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는 일주일 이상 밤샘 수색 작업을 벌였던 구조대원들이 허탈함과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또 그의 죽음에 전 세계가 애도와 위로를 보내고 있다.

김 씨가 살았던 샌프란시스코도 슬픔에 빠졌다. 지역 최대 일간인 샌프란시스코크로니클은 6일 김 씨의 비극적인 소식을 지역뉴스 머리기사로 전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 사회도 이번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현지 교민 신문들이 전했다.

김 씨의 직장이었던 CNET의 네일 아셔 최고경영자(CEO)는 6일 기자회견에서 “그는 영웅이었다”고 추모했다. 김 씨의 생환을 기원하는 인터넷사이트(www.jamesandkati.com)까지 만들었던 동료들은 김 씨가 끝내 사망했다는 소식에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CNET는 회사 홈페이지를 추모 페이지로 꾸몄고 그를 자주 게스트로 초대했던 MSNBC방송도 추모 페이지를 만들었다. 이들 사이트에는 김 씨 가족을 위한 모금과 함께 추모의 글과 e메일이 쇄도하고 있다. 미국 전역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수천 명의 누리꾼이 이 사이트를 다녀갔다. 대부분은 김 씨를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었다.

김 씨 유족은 성명을 통해 “제임스가 사망해 너무나 슬프지만 그의 생환을 위해 헌신한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며 “생면부지의 이방인을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위험을 감수한 여러분이 진정 우리의 영웅”이라고 밝혔다.

아들의 실종 소식에 급히 현지로 달려갔던 김 씨의 아버지 스펜서 김 씨는 벤처기업 CBOL 회장으로 한미연합회 이사장과 코리아소사이어티 이사를 지내 한인 사회에서도 잘 알려져 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