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외환銀 매각계약 파기선언… 국민銀 “이럴수가”

  • 입력 2006년 11월 24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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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잡강정원 국민은행장이 23일 오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계약 파기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착잡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23일 오후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계약 파기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한 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본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7조 원대의 ‘초대형 거래’가 끝내 무산됐다.

론스타와 국민은행이 5월 19일 본계약을 체결한 지 정확히 6개월 4일 만이다.

23일 오후 4시 40분경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이 직접 강정원 국민은행장에게 국제전화를 걸었다. “합의에 근거해 외환은행 계약 파기를 선언한다”는 짤막한 멘트였다.

5월 론스타와 협상 본계약을 체결할 때만 해도 국민은행은 이런 파국을 예상치 못했다. 하지만 론스타에 대한 검찰 수사의 본격화와 이에 따른 국민 여론의 악화, 론스타 경영진에 대한 영장 발부 등 악재(惡材)가 잇달아 터지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마음이 급했던 론스타는 국민 정서와 상업적 협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국민은행을 버리고 다른 협상 파트너를 찾는 길을 택했다.

‘아시아의 씨티은행’을 꿈꾸던 국민은행은 계획에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 론스타, 검찰 압박에 ‘초강수’

론스타는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계약이 파기될 수도 있다”며 잇달아 강경한 발언을 해 왔다.

금융계에서는 론스타가 이를 행동에 옮길 가능성은 적다고 봤다. 국민은행 외에 마땅한 협상 대상을 찾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자신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쉽사리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론스타는 의외의 초강수를 뒀다.

수개월이 걸릴 수 있는 법정 공방까지 진행될 경우 국민은행에서의 대금 입금도 그만큼 늦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당초 론스타가 추가 인수가격 인상이나 배당을 요구한 것이 협상의 걸림돌이 됐지만 이것이 계약 파기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기홍 국민은행 수석부행장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로 이견이 생겨서 파기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막판에 양측의 견해차가 상당 부분 좁혀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결국 검찰 수사에 압박을 느낀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의 조기 현금화를 위해 이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금융권에선 보고 있다.

○ 앞으로 외환은행의 운명은?

론스타는 당분간 외환은행 지분을 유지하면서 배당수익을 가져간 뒤 또 다른 인수자를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매각 대상은 국내 여론이나 검찰 수사에서 자유로운 해외 은행이나 펀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론스타는 대금 결제시기도 그만큼 당길 수 있다.

애초 매각 과정에 참여했던 하나금융지주도 거론되지만 따가운 여론에 대한 부담이 국민은행과 별 차이가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 매각보다는 가능성이 적은 편이다.

국민은행과의 재협상 가능성도 완전히 물 건너간 것은 아니다.

강 행장도 이날 “(재협상) 가능성은 있다고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독자적 행보를 밝히긴 했지만 외환은행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거두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검찰 수사와 국민 여론 등 ‘평판 리스크’가 해소된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외환은행 노조 등에서는 여전히 독자 생존에도 희망을 걸고 있다.

○ 날개 꺾인 국민은행

외환은행 인수로 국내 은행권의 확고부동한 1위를 굳히려 했던 국민은행은 당분간 야심을 접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소매금융의 강자(强者)인 국민은행은 외환은행의 해외 거점을 흡수해 ‘글로벌 뱅크’로 거듭난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신한, 우리은행에 국내 1위 자리마저 위협받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김기홍 부행장은 “나름대로 독자적인 해외 진출 모델이 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한국 외자유치 영향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계약 파기가 앞으로 한국의 외자 유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당수 금융 전문가들은 국내 진출을 노리는 해외 자본들의 투자 심리를 얼어붙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증시가 경제 여건에 비해 저평가돼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릴 기회가 많은 만큼 쉽게 포기할 시장이 아니라는 것.

국내 기업이나 금융회사들이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경영 투명성이 높아진 데다 부채비율이나 수익성이 선진국 수준 이상으로 높아진 점도 이런 분석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 수익을 노리는 사모펀드들이 흔들릴 가능성은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해외 자본들은 국내 우량 기업이나 은행의 경영 투명성에 주목하고 있어 동요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이번 계약 파기는 어떤 형태로든 외국인 투자가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반(反)외자 정서’가 이번 계약 파기를 계기로 확산되면 한국 투자를 검토 중인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경제 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론스타에 대한 검찰 수사를 ‘마녀 사냥’으로 규정하며 투자자의 신뢰 하락에 대한 내용을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국계 은행 임원은 “이번 계약 파기로 해외 자본 유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송진흡 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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