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구직중…아빠는 공부중

  • 입력 2006년 9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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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를 찾아 나선 어머니와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는 아버지. 갈수록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언제 직장을 그만둘지 모르는 불안감이 커지면서 생겨난 풍속도다.

결혼 후 육아 등을 위해 직장을 떠났던 가정주부들이 다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50대 남성들 사이에서는 ‘제2의 인생’에 대비하기 위한 ‘자격증 따기’ 열풍이 한창이다. 끝이 안 보이는 ‘불황의 터널’ 속에서 한국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비집고 들어갈 만한 취업의 문은 좁기만 하다.》

세 자녀를 둔 주부 김유경(가명·44·인천 남동구 만수동) 씨는 15일 아침 모처럼 곱게 화장하고 집을 나섰다. 일을 그만둔 지 20여년 만에 직장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이날 김 씨는 인천 연수구 동춘동의 ‘인천 여성 취업 페스티벌’ 행사장을 찾았다. 여자상업고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 경리직 사원으로 일하던 그는 23세에 결혼하면서 회사를 떠났다.

“40대 후반인 남편이 얼마 전 명예퇴직 이야기를 꺼내 불안한 마음에 여길 왔어요.”

이날 그는 몇 군데 회사 인사담당자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을 봤다. 하지만 40대 중반에 들어선 가정주부를 반기는 곳은 찾기 어려웠다.

“예전에 하던 경리나 회계 일은 엄두도 못 내요. 단순 생산직이나 판매직이라도 좋으니 제발 봉급만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경기침체와 고용불안이 심화되면서 일자리를 찾는 주부가 부쩍 늘고 있다.

취업 정보회사 인크루트에 신규로 구직(求職)신청서를 낸 기혼 여성은 2003년 7500명에서 지난해 1만4052명으로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이달 12일까지 1만1282명이 취업을 희망했고 연말까지는 1만6300명에 이를 전망이다.

실제로 취업하는 주부도 증가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여성 취업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3% 줄었다. 하지만 주부 연령층인 30대와 40대 여성 취업자는 각각 4.4%와 1.8% 늘었다.

특히 50대는 5.4%나 증가했다.

인천=주성원 기자 swon@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인천 부평소상공인지원센터 소장인 권오식(58·경기 부천시) 씨는 3일 경영지도사 자격시험을 치를 때까지 다섯 달 동안 1주일에 세 번씩 퇴근 후 학원을 찾았다.

환갑에 가까운 권 씨에게 ‘주경(晝耕)’에 이은 3시간의 ‘야독(夜讀)’은 쉽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좀 더 책을 보려다 코피를 쏟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이달 말 예정인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기도 전에 그는 지금 1주일에 두 번씩 공인중개사 학원에 나가고 있다.

권 씨는 “올해 말 정년퇴직을 하면 중소기업전문 컨설턴트로 일하기 위해 경영지도사 시험을 준비했다”며 “공인중개사는 은행에 근무한 경험과 지식을 살리면 경쟁력 있는 부동산 중개업소 운영이 가능할 것 같아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업종을 바꾸려는 50대 자영업자들이 ‘제2의 인생’에 대비하려는 노력을 많이 하면서 각종 자격증 학원이 붐비고 있다. ‘사오정’(45세에 정년)이 상례화되고 고령화가 급속히 이뤄지면서 ‘생존’을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 아저씨들이 아들뻘 되는 젊은이들과 학원에서 공부하는 모습은 일상적인 풍경이 됐다.

한국토지공사 자료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시험 합격자 중 50대의 비율이 1회(1985년) 5.3%에서 16회(2005년)에는 10.7%로 2배가량 늘었다.

2003년 취업 포털 사이트인 ‘커리어’(www.career.co.kr)의 50대 회원 가입자는 8800명이었으나 지난해 1만2610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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