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납치 사과도 없는데 용서라니”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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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김국주 광복회장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이 김국주 광복회장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이 지난날 한 일을 용서하자’는 취지로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의 과거에 대해 대통령이 ‘용서’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건 없이 용서하자?=노 대통령의 발언이 주목을 끄는 것은 “지난날 북한이 저지른 전쟁과 납치”를 거론하며 “지난날을 용서하자”고 했기 때문. 이는 6·25전쟁 도발과 전쟁 중, 그 이후의 납치를 용서하자는 뜻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아직도 생존해 있는 상황에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

이에 앞서 노 대통령은 5월 9일 몽골 방문 때 동포간담회에서 “북에 많은 양보를 하려고 하지만 6·25전쟁에 대한 국민의 평가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백지화하는 식으로 양보할 수는 없다”며 ‘6·25전쟁에 대한 용서’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따라서 이번 경축사에서 ‘전쟁 도발에 대한 용서’를 거론한 것은 이보다 더 나아간 것으로, 사실상 ‘조건 없는 용서’를 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계속되고 있는 북한 포용 기조를 되풀이한 것으로 당장 특별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사과 없는 용서는 곤란”=남북 간에 청산해야 할 과거 주요 사건에는 △6·25전쟁(1950∼1953년)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납치와 그로 인한 이산가족 문제 △미얀마 아웅산묘소테러사건(1983년 10월)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1987년 11월) 등 수없이 많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국군포로 납북자는 존재하지 않으며 6·25전쟁은 북침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사건을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북한은 사과할 생각조차 않고 있다.

다만 ‘1·21 청와대 습격사건(1968년)에 대해 1972년 당시 김일성 주석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유감을 표명했고 2002년 5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만났을 때 “극단주의자의 소행으로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김영호 교수는 “용서를 하더라도 북측의 잘못에 대한 인정과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며 “노 대통령의 발언은 남북정상회담을 의식한 메시지로 들리지만 북측 사과 등 절차가 무시될 경우 심각한 국민적 저항에 부닥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국내 친일 잔재 청산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북한에 대해서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과거사 청산에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며 △철저한 진상 규명과 사과 △배상 또는 보상 △명예회복 등 3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현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낸 조건식 한림대 객원교수는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고 선언했고 미사일을 발사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용서를 이야기하는 등 북한과 타협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피해자 단체들의 반발=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쌀 지원 중단을 이유로 이산가족 상봉을 중단하는 등 인도주의를 무시하고 납북자, 국군포로에 대해 인권을 유린하고 있는 북한의 사과 없는 용서와 화해는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도 “북한이 역사에 지은 범죄를 규명해야 할 국가 지도자가 북한의 사과를 촉구하기는커녕 이를 묻고 넘어가자는 것은 북한의 범죄행위에 동조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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