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교육원]평생배움으로 새 행복찾기 나선 ‘음식남녀 4인’

  • 입력 2006년 8월 16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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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와 도전을 통해 제2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4명의 음식남녀. 김응석 김성미 강선호 피윤정 씨(왼쪽부터)가 주방 용구를 들고 뮤지컬 ‘난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공부와 도전을 통해 제2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 4명의 음식남녀. 김응석 김성미 강선호 피윤정 씨(왼쪽부터)가 주방 용구를 들고 뮤지컬 ‘난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원대연 기자
《배움에는 끝이 없다.

공부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든 사람에게는 새로운 인생의 지평이 열린다.

요리를 통해 삶의 업그레이드에 성공한 ‘음식남녀(飮食男女)’ 4명의 이야기가 평생교육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각 대학 평생교육원의 프로그램을 잘만 활용하면 취업과 창업에 유리한 자격증을 딸 수 있다.

학점은행제 등을 통해 학사학위를 취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배우려는 의욕에 가득찬 당신.

평생교육원이 손짓하고 있다.》

인생이라는 ‘학교’에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자주 일어난다.

불운은 이겨내기 힘들지만 때로 훌륭한 ‘스승’이 되기도 한다.

김성미(31) 피윤정(33) 김응석(36) 강선호(27) 씨.

이들은 대학 시절 배운 전공이나 처음 선택한 직업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이 ‘평생교육’을 통해 찾은 인생의 새 행로는 요리였다.

이들은 프랑스 요리 전문 교육기관인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서 요리 또는 제과 과정을 수료했다.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레스토랑 ‘멜리스’에서 요리로 제2의 도전에 나선 4명을 만났다.

○ 쓴맛

1997년 성악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성미 씨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현지에 도착할 때까지 그의 머리 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다시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몇 개월 전부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소리가 생명이나 다름없는 성악가에게는 치명적인 성대 결절이었다.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키워 온 프리마돈나의 꿈을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운 때문에 포기할 수는 없었다.

오스트리아에 있는 음악 학교들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이름 없는 작은 학교조차 목소리에 결함이 있는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피 씨는 1997년 말 종합금융회사에 다니다 외환위기에 휘말려 직장을 잃었다. 커리어우먼을 꿈꾸며 장밋빛 미래를 그렸던 그에게는 날벼락이었다.

1998년 결혼했다. 남편의 질문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냐. 평생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김응석 씨와 강선호 씨는 요리와 인연을 맺기 전에 이미 ‘식도락(食道樂)’을 즐겨 왔다. 하지만 경영학을 전공한 김 씨는 줄곧 은행과 증권사에서 일했고 강 씨는 엉뚱하게도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 새로운 맛

2005년 겨울밤 김성미 씨는 문득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에 사로잡혔다. 스케치가 취미인 그는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다양한 모양의 케이크를 그리고 또 그렸다. 성악가의 꿈을 접은 뒤 처음으로 느낀 흥분과 열정이었다.

“꾸준한 치료로 목소리는 되찾았지만 완전하지 못해 성악가의 꿈을 포기했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얼마나 자주 울었는지…. 하지만 빵을 굽고 케이크를 만들면서 인생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배웠다.”

르 꼬르동 블루의 제과 과정을 수료한 그는 영국 런던으로 요리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피 씨 부부가 오랜 고민 끝에 찾은 해답도 요리였다.

“집안 살림살이에 당장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라 즐거워하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다른 일을 함께 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10년간 제과, 제빵과 관련된 공부를 정말 독하게 했다.”

피 씨는 인터넷 카페에서 요리 클래스를 운영하며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반면 두 남성은 식도락의 수준을 넘어 아예 전문가의 길을 선택했다.

김응석 씨는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며 “지난해 요리를 제대로 공부하면서 점점 더 행복해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친 김에 올해 6월 레스토랑 멜리스를 차렸다. 금융권에 남아 있는 가까운 친구들은 레스토랑이라는 말은 빼고 “‘식당’은 잘 되느냐”며 짓궂게 묻는다.

“그래, 나 식당 주인 됐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의 당당한 답변이다.

강선호 씨는 외식업체에 이어 현재 주방용품 회사 ‘테팔’에 근무하면서 요리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에서 요리, 제과 부문의 단기과정을 수료한 그는 “한식의 세계화가 꿈”이라며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한식 메뉴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나누는 맛

김응석 씨는 자신의 개성에 어울리는 소양을 찾는 것이 평생 교육, 나아가 ‘평생 행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직은 주변의 편견과 싸우고 있다.

“대충 먹어.” “배 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먹는데 왜 돈 쓰냐.”

그가 싫어하는 말들이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요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문화”라며 “이런 생각이 사회 속에서 보편화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배우고 전파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미 씨는 지난해 겨울 케이크를 주변 사람과 나누는 스케치를 한 것처럼 요리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자 정성이며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요리는 항상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게 된다. 요리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아무리 재료가 비싸도 마음이 담겨 있지 않으면 맛이 없다는 것이다.”

새로운 배움과 인생에 전공, 경력,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게 네 사람의 공통된 의견이다.

“많이 하는 말이지만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다. 일단 도전하면 길은 열린다. 좋아하는 것에 뛰어드는 결단이야말로 최고의 선택이다.”(피윤정 씨)

강선호 씨는 단기 쿠킹클래스에 이어 지속적인 요리 공부를 통해 요리연구가의 경력을 쌓고 있다. 그는 “각 대학에 개설돼 있는 평생교육원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면 미래를 설계할 때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천국은 요리된 큰 감자와 그것을 나눌 사람이 있는 곳이다.”(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 씨)

4명의 음식남녀. 출발 지점은 제각각이지만 이들은 끊임없는 배움을 통해 자신과 이웃이 모두 행복해지는 길을 찾아가고 있다.

글=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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