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가 떠났다 돌고돌아 또…” 종사여성 999명 조사

  • 입력 2006년 2월 23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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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사창가에서 성매매를 시작한 여성의 수가 오히려 늘어났으며, 경찰의 단속을 피해 사창가를 떠났던 성매매 여성들도 대부분 되돌아간 것으로 조사됐다.

또 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성매매 여성들이 티켓다방이나 안마시술소 등 유사 업종으로 흘러들어 가는 이른바 풍선 효과(풍선의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불거지는 것처럼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그 대신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현상)가 수치로 확인됐다.

이는 본보가 2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고경화(高京華) 의원에게서 입수한 자료에 따른 것이다. 고 의원은 최근 한 달간 남서울대 이주열(李州烈·보건행정학) 교수팀과 공동으로 전국의 사창가 성매매 여성 99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일반적인 성매매 현황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적은 있지만 성매매 여성을 상대로 한 전국 규모의 직접 설문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음지에서 나타난 풍선 효과=현재 서울 성북구 속칭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하는 김모(24) 씨는 지난해 말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특별법이 시행된 2004년 9월 이후 한동안 일을 그만뒀지만 ‘백수’로 지내다 보니 돈이 궁해졌고 새 직장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는 것.

김 씨는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었다”며 “예전에 함께 있던 동료들 중에도 나처럼 돌아온 사람이 몇 명 된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에 응한 성매매 여성의 64.5%(644명)는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새로 사창가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35.5%(355명)는 특별법 시행 이전부터 사창가 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355명 중 302명은 단속이 강화되면서 사창가를 떠났다가 1년 반이 못 돼 다시 이 생활을 시작했고 53명은 떠나지 않고 버틴 경우다.

다시 돌아온 302명의 복귀 시기는 2005년 7월 이후(70.5%)에 몰려 있다. 특별법이 시행된 지 1년 만에 급속히 효과를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귀자 중 절반 이상인 54%(중복 응답)는 사창가를 떠났던 기간에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티켓다방 등에서 일하거나 인터넷 성매매, 출장마사지 일을 했다고 답변했다. 한쪽을 누르면(단속하면) 다른 쪽이 불거지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

마땅히 갈 곳을 찾지 못해 아무런 일을 하지 않은 경우도 42%나 됐다. 일반 직장을 새로 얻었던 여성은 10명(3%)밖에 안 됐다.

사창가에 돌아온 이유로는 ‘수입 부족’을 꼽은 여성이 34.6%(344명)로 가장 많았고, ‘새로운 생활 부적응’(19.8%), ‘일하기가 어렵다’(11.6%) 등이 뒤를 이었다.

다만 이들이 하루 동안 상대한 남성의 수는 특별법 시행 이전 ‘평균 7∼9명’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으나 특별법 이후에는 ‘1∼3명’으로 나타나 성매매 남성은 줄었음을 보여 줬다.


▽“물고기 잡는 법 가르쳐야”=전문가들은 정부가 성매매특별법의 가시적인 효과만 홍보하지 말고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 지원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상당수 여성이 사창가를 떠났다가도 결국 자기 발로 돌아가는 이유는 길들여진 새가 새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처럼 사회적응 능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고 의원은 “인터넷 성매매 등 성매매특별법의 풍선 효과로 나타나는 신종 성매매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성윤리가 다시 문란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성병관리 대책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가족부 권용현(權容賢) 권익증진국장은 “법을 시행해 보니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이 나타났다”며 “성매매 여성들에게 창업 지원, 직업훈련, 의료 및 법률 지원 등을 계속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홍등가 왜 못떠나나▼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 속칭 ‘청량리 588’에서 1년째 일하고 있는 김모(24) 씨는 오후에 출근했다가 다음 날 오전 2시경 퇴근하는 출퇴근형 성매매업 종사자다.

김 씨는 소득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한 달 카드 소비액이 900여만 원은 된다”고 답했다. 주로 명품 가방과 옷, 화장품 등을 사는 데 쓴다고 한다. 김 씨는 “20일 일하고 10일간 쓴다”며 “내 조건에 여기 말고 그런 돈을 벌 곳은 없다”고 말했다.

김 씨의 경우에서 보듯 사창가 여성들이 성매매업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돈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응답 여성의 40.9%가 ‘사창가를 떠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기대한 돈을 벌 수 있어서’라고 답했다. 남서울대 이주열 교수는 “생계 때문에 성매매를 하는 여성이 많기는 하지만 사치스러운 소비를 위해 성매매에 나서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성매매는 단순히 성문제가 아니라 과소비 등 그 사회의 병폐 현상과 직접 관련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업소 관계자 모임 허락 얻어 설문조사후 봉해 수거▼

전국의 성매매 여성을 직접 설문조사하는 첫 시도는 어렵게 성사됐다. 이른바 ‘포주’로 불리는 관리자들의 허락 없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한꺼번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과 남서울대 이주열 교수팀은 ‘한국에이즈퇴치연맹’과 손잡고 성매매업소 관계자들의 모임인 ‘자율정화위원회’ 측의 허락을 얻어냈다. 이 교수가 2003년 서울지역 성매매 여성의 무료 콘돔 사용 실태를 조사할 때부터 쌓아온 인맥을 활용했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예방 강의를 해온 사람들이 지역별로 1명씩 투입됐다. 조사자들은 해당 여성들이 응답을 마치면 설문지를 곧바로 봉해 포주들도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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