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고속철 계룡산 노선 ‘환경 마찰’

  • 입력 2006년 2월 20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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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도 1호선 노선 변경 공사를 하고 있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박정자고개 공사 현장. 산허리가 잘려 시뻘건 황토를 드러냈다. 멀리 계룡산 국립공원 장군봉이 보인다. 공주=이기진 기자
국도 1호선 노선 변경 공사를 하고 있는 충남 공주시 반포면 박정자고개 공사 현장. 산허리가 잘려 시뻘건 황토를 드러냈다. 멀리 계룡산 국립공원 장군봉이 보인다. 공주=이기진 기자
‘드르륵, 드르륵, 꽝.’

17일 오후 충남 공주시 반포면 학봉리 국립공원 계룡산 봉래계곡.

대전시와 공주시 경계인 박정자 고개를 넘었다. 국도 1호선 충남 논산 두마∼공주 반포 간(10.1km) 국도 확장 포장 공사 현장이 한눈에 보였다.

산허리는 아파트 공사장과 비슷했다. 지름이 30cm 이상 되는 고목은 잘려 나간 채 나이테를 드러냈다.

도로 공사로 계룡산이 공원의 모습을 잃고 있다. 여기에다 호남고속철도가 통과할 예정이어서 충청 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종교계, 학계가 노선 변경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추진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단체도 물리적 대응을 자제해 ‘제2의 천성산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운치 잃은 공원 계곡=여름철 가족나들이 명소였던 봉래계곡 바닥에는 토사가 쌓여 있었다. 제석봉 간월암으로 가는 운치 있는 길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계곡 입구에서 산닭·오리식당을 하는 김모(56·여) 씨는 “2년 전부터 소음과 먼지 때문에 손님의 발길이 완전히 끊겼다”고 말했다.

연인들의 명소였던 소류지 입구 K민속주점은 문이 닫혀 있었다.

이곳은 시민단체가 환경 훼손을 우려해 공원지역을 피해서 공사하도록 요구했던 지역.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2개 터널을 만드는 방식으로 1998년 공사를 시작했다.

환경단체의 반발과 법적 투쟁으로 공사가 여러 차례 중단됐다.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은 더는 개통을 미룰 수 없다며 올해 600억 원을 투입해 마무리할 계획이다. ▽호남고속철 연내 착공=정부는 2017년까지 충북 오송과 전남 목포를 연결하는 호남고속철을 이르면 올해 안에 착공할 계획이다.

정부의 기본계획안은 경부선 분기점인 오송을 출발해 익산∼광주∼목포를 연결하는 신설 노선. 총길이는 230.9km.

차량 구입비 7326억 원을 포함해 모두 10조979억 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정차 역은 오송역 익산역 송정리역(광주) 임성리역(목포) 등 4곳이다.

국토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이런 내용의 1차 계획안을 발표했다.

건설교통부와 국토연구원은 주민 의견을 수렴한 뒤 △계룡산 및 금강의 환경 훼손 정도 △오송∼익산 노선의 수정 및 공주역 신설 등 쟁점 사항을 수정안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토연구원은 전문가 5명과 충남북, 광주·전남북 추천 인사 5명 등 10명으로 ‘의견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쟁점 사항을 검토하는 중이다.

충남기업인연합회 한평용(韓平鏞·52) 부회장은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자료에 따르면 계룡산 국립공원을 지나는 국도 1호선 확장 포장 공사의 환경 훼손 논란으로 공사가 늦어져 985억 원의 국고손실이 발생했다”며 “정부가 사업을 투명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반발=대전충남지역 시민단체와 종교계, 학계가 참여하는 계룡산시민연대(상임대표 지성 신원사 주지)는 계룡산과 금강 통과 노선의 환경성 검토가 부실해 계룡산을 훼손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공주시민들은 중간 역을 공주 시내에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시민연대 이준원(李畯遠·43·공주대 교수) 운영위원장은 “기본 안이 국립공원과 910m 떨어져 있지만 열차가 시속 300km 이상 주행하는 노선 주변에는 다양한 천연기념물이 있다”며 “터널공사, 방음벽 설치 등 정부의 대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계룡산시민연대 회원들은 노선 수정을 촉구한 뒤 15일부터 공주시 금성동 사무실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계룡산에 있는 갑사와 동학사 신원사 및 주변 사찰도 노선을 수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경남 양산시 천성산 경부고속철도 노선 반대운동과 비슷한 양상이다.

공주지역에서는 정부가 노선 변경을 애초부터 생각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반대운동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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