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도시 예정지 보상 시작 후 첫 명절 표정

  • 입력 2006년 1월 31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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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뒤 빼곡한 차량충남 연기군 남면 양화리 입구. 주민들의 보상 조건을 담은 현수막이 설 귀성객을 맞고 있는 가운데 부모를 찾은 자녀들의 차량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연기=지명훈 기자
현수막 뒤 빼곡한 차량
충남 연기군 남면 양화리 입구. 주민들의 보상 조건을 담은 현수막이 설 귀성객을 맞고 있는 가운데 부모를 찾은 자녀들의 차량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연기=지명훈 기자
‘헌재 기각 불복으로 주민 생명 재산 지킵시다.’

‘양도세 등 보상관련 제 세금을 폐지하라.’

설인 29일 오후 2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지인 충남 연기군 남면 종촌리에 접어들자 각종 현수막이 눈앞을 가렸다.

보상을 원천적으로 반대하거나 조건부로 수용하는 주민들이 각각 상반된 내용의 현수막을 내건 것. 보상을 기정사실화한 금융기관과 부동산 등이 내건 ‘OO은행이 정성껏 모십니다’ ‘땅 삽니다’ 등의 현수막도 틈새를 비집고 들어섰다.

○ 자녀가 많이 찾은 명절

보상지에 ‘효자’ ‘효녀’가 넘친다던가.

한 슈퍼마켓 주인은 “보상이 시작된 후 첫 명절이라 그런지 객지에서 수년 만에 얼굴을 내비치는 사람이 꽤 많아 보인다”며 “제 몫을 챙기려는 생각이 아니더라도 워낙 뉴스의 초점이 된 고향이라 궁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양초등학교를 돌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현수막이 내걸린 부안 임씨 집성촌인 양화리로 접어들었다. 이 마을에 이르기까지 진위리 등 지나는 동네마다 외지 번호판 차량들이 골목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정작 인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명절이면 매번 윷놀이와 막걸리 파티 등으로 북적댔던 양화1리 사무소 앞. 친구들과 차량 틈에서 보상 문제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이 마을 임현수(43·농업) 씨는 마을 어귀가 한적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두 고향을 찾은 자식, 친지들과 보상 문제를 논의하느라 대문 밖에 나올 시간이 없지요. 이번 명절이 보상 문제에 대한 각 가정의 입장을 정리할 마지막 시간이잖아요.”

○ 뒤바뀐 인사말 속 세대 간 이견도

올해 이곳의 설 인사말은 예년과 달랐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이제 자주 보지 못하겠네요”였다.

수백 년간 집성촌을 이루어 살면서 명절이면 ‘사돈의 팔촌’까지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제 상당수가 보상을 받아 정든 고향을 등져야 하기 때문.

친척을 만나러 양화리에 왔다는 임충수(43) 씨는 “30여 년 전 연세초등학교를 다닐 때 전교생 500명 가운데 470명이 임씨였고 한 반에 같은 이름이 6, 7명이나 돼 외지에서 오신 선생님들이 출석부 정리에 애를 먹었을 정도로 끈끈한 혈육관계를 지닌 고향이었는데 이제는 그 정겨운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노년층은 고향을 떠나는 문제와 문중의 해체를 걱정했지만 젊은이들은 ‘생계’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다. 가장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인 것은 종중산 처리 문제.

노년층은 “보상을 받으면 종중산을 다른 곳에 다시 마련해야 종중의 명맥을 이을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젊은층은 “공원묘지가 잘 조성된다니 그 돈으로 각자 생계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 아니냐”는 논리를 폈다.

○ 상반된 홍보전과 투쟁

부동산중개업소와 장묘 업체, 금전대출 업체는 자녀들이 방문하는 이번 명절을 의사 결정의 중요한 기회로 활용했다. ‘땅 삽니다’ ‘장묘 이전 전문업체에 맡겨 주세요’ ‘저렴한 대출 OK’ 등의 플래카드를 마을 어귀마다 내걸고 홍보전을 폈다.

일부 부동산중개업소는 명절임에도 각 가정에 전화를 걸어 “예정지 주민의 이주 택지를 비싸게 매입하고 있다”며 매매를 종용했다.

반면 행정도시건설청과 충남도, 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원회는 각각 홍보물을 제작해 이주 택지를 조급하게 팔아넘기지 말 것을 권고했다.

한편 행정도시주민보상대책위 등은 토지나 지장물(건축물 등)에 대한 보상(직접보상)이 돌이키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미 보상이 시작된 만큼 생계 대책에서 해법을 찾기로 투쟁 방향을 선회했다.

하지만 행정도시원천반대투쟁위 등은 아직도 “보상은 무슨 보상이냐”며 원천 반대를 외치고 있었다.

행정도시건설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0일 토지 소유자 1만23명에 대한 보상을 시작한 뒤 현재까지 주민이 수령한 보상금은 전체 3조4000억 원 가운데 17.1%(5331억 원)에 그쳤다.

공주·연기=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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