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大入논술 교수들이 채점해 보니

  • 입력 2006년 1월 24일 03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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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식 모범 답안은 A급 논술이 될 수 없다.”

2006학년도 대학입시 논술 채점을 마친 교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학원에서 주워들은 사례나 전개 방식에 따른 논술은 잘해봐야 평균점을 얻는 데 그친다는 것. 이들은 자신의 생각이 담긴 자유로운 논술이 더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조언했다.

▽성적 분포는 마름모꼴=채점 위원들은 수험생의 논술 성적 분포를 ‘마름모꼴’로 묘사한다. 잘 쓰는 수험생은 대개 10% 안팎이며, 10∼20%는 아예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나머지 수험생은 점수가 엇비슷하다는 말이다.

채점 위원들은 제시문의 인식 및 분석 정도, 수험생의 의견 제시 등을 기준으로 이해, 대략 이해, 이해 못함 등 3단계로 답안지를 분류한다.

▽학원별 특성 드러나=성균관대 A 교수는 “답안지를 읽다 보면 ‘같은 학원에서 훈련받은 학생이 쓴 답안’이란 판단이 든다”고 말했다.

한양대 B 교수는 “첫 대목이 유사한 답안지를 한곳에 모아놓고 정밀하게 읽어 보면 결국 같은 내용”이라며 “몇 마디만 읽어도 수험생이 어느 학원에서 논술 공부를 했는지 알아차릴 정도가 됐다”고 말했다.

서강대 C 교수는 “유명 논술학원 서강대반을 수강한 합격자와 서울지역 출신 합격자의 논술 점수를 비교해 보니 차이가 거의 없었다”면서 “수험생은 학원을 다니면 평균점은 맞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평균점은 결과적으로 낙제점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모범 예시문은 피해야=마름모꼴의 중간에 해당하는 수험생의 특징은 예시문이나 예로 든 학자의 이름이 비슷하며 자신의 주장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실제 논술학원은 하나의 주제에 15∼20개가량의 인용구를 나눠 준다. 문제는 수험생이 이를 문맥에 관계없이 인용한다는 점이다.

올해 한양대 논술의 인문계열 주제는 ‘미래 사회 인간의 정체성과 인간과 기계의 상호관계’였다. 많은 수험생이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감정이다” “로봇은 우정과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식으로 썼다.

한양대 D 교수는 “논술학원에서 배운 대로 예상 주제를 설정하면 바로 감점 요인”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주제라면 프랑스 소설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인용하고, 법이 주제라면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인용하는 수험생이 의외로 많다.

서울대 E 교수는 “지난해 음대 수험생이 법대나 인문대 수험생보다 논술을 더 잘 쓴 경우가 많았다”면서 “논술학원의 규격화된 훈련보다는 자유로운 사고가 더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진주알로 목걸이 만들어야=교수들은 오랜 시간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논술의 비법이라고 말한다.

서강대 F 교수는 “학교에서 얻은 지식이 진주알이라면 논술은 진주목걸이”라며 “진주를 꿸 수 있는 능력은 독서와 신문 읽기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고려대 G 교수는 “어떤 식으로 글의 유기적 틀을 만들 것인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면서 “모범 답안보다는 주제에 맞는 기획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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