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항쟁 도화선’ 故박종철씨 19주기 추모식

  • 입력 2006년 1월 16일 03시 05분


코멘트
박종철 씨가 물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는 13일 오후 박 씨가 물고문을 받은 욕조 옆에 화환과 박 씨의 평전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신원건 기자
박종철 씨가 물고문을 받던 중 사망한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 509호.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는 13일 오후 박 씨가 물고문을 받은 욕조 옆에 화환과 박 씨의 평전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신원건 기자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고 박종철(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씨의 19주기 추모 행사가 13일 오후 그가 고문당했던 옛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경찰청 남영동 보안분실) 509호에서 열렸다.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에는 박 씨의 아버지 박정기(77) 씨와 박 씨가 고문을 당하면서도 소재를 밝히지 않았던 서울대 선배 박종운(46) 씨, 박 씨의 대학 후배, 대학생 등 40여 명과 인권단체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박 씨의 추모 행사가 그가 숨진 현장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1987년 1월 14일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을 받다 숨졌다. 기념사업회는 박 씨의 영정을 물고문을 받던 욕조 옆 세면대에 화환과 함께 세워 놓았다.

경찰은 옛 과오를 반성하는 의미에서 욕조와 변기 세면대 침대 등 당시 고문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실제 주소지는 용산구 갈월동이지만 국철 남영역 근처에 있어 남영동 분실로 불려 왔던 이곳은 현재 경찰청인권보호센터가 입주해 있으며 경찰은 이 건물을 인권기념관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기념사업회는 박 씨가 안장돼 있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에서 14일 추모식을 열었다.

기념사업회장인 안승길 신부는 추모사에서 “당신의 육체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당신의 숭고한 심령은 더욱 강하게 우리 민중 안에 살아 강렬한 향기를 뿜고 있다”며 “밑씨가 떨어져 썩어야만 싹이 트고 결실을 본다는 말씀이 연상된다”고 말했다.

박 씨 사망 당시 본보는 “‘탁’ 하고 책상을 치니 ‘억’ 하고 쓰러져 쇼크사했다”는 경찰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해 부검의 등을 취재해 고문 때문에 숨진 사실을 특종 보도했다.

이 보도를 계기로 학생과 재야인사들은 고문정권 규탄 시위에 들어갔고 고문 가담 경관이 모두 5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반독재 민주화투쟁은 직장인 등 ‘넥타이 부대’가 시위에 대거 동참하는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