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과학이 희망이다]<中>떠오르는 주역들

  • 입력 2006년 1월 4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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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연구원에 근무하는 연구원 1000명이 황우석(黃禹錫) 교수 1명을 못 당하느냐’는 비판을 그동안 많이 받았습니다. 이제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우리도 제 역할을 해야지요.”

2003년 인공 씨감자를 개발해 대량생산의 길을 열면서 세계 32개국에서 특허를 따낸 생명공학연구원 정혁(鄭革·자생식물이용기술개발사업단장) 박사.

그는 “황 교수 사건이 늦게 터졌더라면 과학계에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덕 연구개발(R&D) 특구에는 정 박사처럼 밤낮없이 연구에 몰두하면서 성과를 올린 과학자들이 많다. ‘대덕의 주역’으로 꼽히는 학자들을 소개한다.

○ 줄기세포의 대안을 찾아라

바이오 분야에서 중장기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생명공학연구원. 본보 취재팀이 찾았을 때 이곳은 ‘황우석 파문’의 충격에서 막 벗어나 비상(飛上)을 위한 날갯짓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 박사는 이곳에서 농업생명공학 분야 전문가로 통한다. 2000년부터 과학기술부 산하 21세기 프런티어연구개발사업단을 이끌면서 생명공학기술 상용화를 주도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연구소를 평가하는 기준이 논문 몇 편, 특허 몇 건을 따지면서 1년 단위로 A에서 D까지 등급을 매긴다”면서 “단기적인 업적을 내놓으라고 강요하면 기초연구는 뒷전이고 부풀리기만 하는 연구 풍토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가 흥에 겨울 수 있는 분위기부터 먼저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생명공학연구원에선 새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암세포를 직접 파괴하는 ‘자연 살해(Natural Killer·NK)’ 세포의 분화와 활성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한 최인표(崔仁杓·세포체연구부장) 박사.

그는 환자의 골수(骨髓)에서 추출한 성체 줄기세포를 자연 살해 세포로 분화시킨 다음 다시 환자 몸에 주입해 면역거부 반응 없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과학계에선 평가하고 있다.

또 박홍석(朴洪石) 박사는 침팬지의 Y염색체 2300만 개 가운데 절반이 넘는 1270만 개를 해독하는 데 성공해 인간 진화과정과 감염성 질환이나 암이 발생하는 과정을 규명하는 돌파구를 만든 과학자.

○ KAIST의 숨은 주역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상엽(李相燁·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생명공학계의 ‘샛별’ 같은 존재로 꼽힌다.

스물아홉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KAIST 교수직에 임용된 이후 10여 년간 국내외 학술지에 197편, 각종 학술대회에 710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 10여 개의 해외 유명 저널에서 편집인이나 부편집인, 편집위원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생명공학의 중요 분야로 떠오르고 있는 ‘대사공학’과 생물의 세포실험을 컴퓨터로 대체하는 ‘가상세포’ 분야에서 권위자로 꼽힌다. 그러나 그는 아직 인생 목표의 1%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한다.

“고(故) 정주영(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직원이 와서 이런저런 이유로 일이 잘 되지 않았다고 보고를 하면 ‘제대로나 해봤나?’라고 반문했다고 합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똑같이 물어봅니다. 거짓 없이 성실하게 맡은 연구를 하다 보면 과학자들은 위축될 일이 없습니다.”

부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아인슈타인 얼굴을 가진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을 선보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한 KAIST의 오준호(吳俊鎬·기계공학과) 교수도 있다.

로봇 연구만 15년째 해 온 오 교수는 2002년 이후 ‘휴보 FX-1’과 ‘알버트 휴보’ 등 5가지 모델을 선보였다. 로봇 연구에서 한참 앞서가던 일본은 오 교수의 연구 결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연구원들에게 자꾸 돈 벌어 오라고 다그쳐선 안 됩니다. 벤처 바람이 한창 불 때 학생들이 연구실을 박차고 장사한다고 나갔습니다. 그때 연구소가 와해될 뻔했죠.”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로봇 상업화 유혹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는 연구에만 전념할 생각이다.

○ IT와 BT를 융합하라

전자통신연구원(ETRI) 미래기술연구본부 바이오정보연구팀장을 맡고 있는 박선희(朴善熙) 박사는 지난해 초 유전자(DNA) 칩을 분석해 암이나 당뇨병 같은 질병과 관련 있는 특정 유전자를 선별해 낼 수 있는 최첨단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이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1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갖고 있다는 게 과학계의 추산. 1994년부터 대덕 연구단지에서 일해 온 박 박사는 IT와 생명공학기술(BT)을 융합해 상업화하는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ETRI의 김현탁(金鉉卓·테라전자소자팀장) 박사는 물리학계의 난제였던 ‘모트 금속-부도체 전이현상’을 지난해 증명한 과학자.

물리학계는 부도체가 갑자기 금속처럼 전기가 통하는 현상에 대한 원리를 이론화하고 실험으로 증명한 김 박사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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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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