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장년층 돌아와…반가운 아기울음…젊어진 섬마을 만세

  • 입력 2005년 8월 3일 0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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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노화읍 미라리는 아이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섬마을이다. 미라리 아이들이 마을 뒤쪽 언덕에 만들어진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 노화도=정승호 기자
전남 완도군 노화읍 미라리는 아이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 섬마을이다. 미라리 아이들이 마을 뒤쪽 언덕에 만들어진 놀이터에서 놀고 있다. 노화도=정승호 기자
지난달 25일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서 뱃길로 30분 거리인 노화읍 미라리. 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붉은 벽돌로 지은 아담한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골목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거나 옹기종기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하는 아이들로 시끌벅적했다. 나루터에선 유모차에 갓난아이를 태우고 나온 젊은 아낙네들이 보였다. 다른 섬마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풍경이다.

7월 말 현재 미라리 인구는 117가구 317명. 노화읍 전체 인구가 2003년 말 6179명에서 지난해 말 6031명으로 줄었지만 미라리는 오히려 7가구 12명이 늘었다.

올해 들어서는 9가구 17명이 이사를 왔다. 전체 주민 가운데 42%인 135명이 20∼40대다.

충북 청주시에서 전자제품 부품회사에 다니던 최용대(30) 씨는 2003년 고향인 미라리로 돌아왔다.

3교대 근무가 힘든 데다 나이 든 부모님을 돌보기 위해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섬마을로 귀향한 것. 어장 일이 힘들어 손바닥에 굳은살 투성이이지만 최 씨는 전복 양식으로 연간 1억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다.

김동석(38) 이장은 “청장년이 늘어나면서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마을에 생기가 넘친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라리는 보잘것없는 어촌이었다.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번성했던 김, 파래 양식이 쇠퇴했다.

이 마을에 활력을 불어 넣은 것은 전복 양식이었다. 1996년부터 몇몇 주민이 전복 양식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자 고향을 떠났던 사람이 하나 둘 돌아왔다. 외환위기 등으로 직장을 잃은 도시민이 귀향해 양식업에 뛰어들었다.

지난해 주민들은 500여 t의 전복을 수확해 2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가운데 종패 값, 가두리 자재 값, 먹이 비용 등을 제외한 40∼50%가 순이익이다.

청년회장 김이호(36) 씨는 “사람이 많지 않은 마을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40세가 되면 청년회를 탈퇴해야 한다”면서 “부촌으로 통하다 보니 농어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총각이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마을 인근 노화북초등학교는 미라리 아이들 때문에 학교 시설을 늘려야 할 형편이다.

전남의 5개 시 지역을 제외한 17개 군에서 매년 학생 수가 늘고 있는 곳은 이 학교가 유일하다. 농어촌 인구가 급감하는 추세 속에 미라리 인구가 매년 늘자 5월 대통령 직속 농어촌특별위원회는 이 마을에 관계자들을 보내 현장조사를 벌였다.

노화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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