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자료집서 드러난 성폭행 실태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7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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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밀양지역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보호방안 확보 및 수사기관의 제도 개선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 조사과정에서 절차의 중요성은 경찰청이 최근 발간한 성폭행 진술녹화 자료집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자료집은 성폭력전담조사반 소속 경찰들이 올해 3월부터 247개 지방경찰청 및 일선경찰서에 설치된 진술녹화실에서 성폭력 피해자로부터 받은 진술들을 엮은 것.

경찰에 따르면 올해 8월 경북 구미시의 모 중학교에서는 남학생 5명이 1년 아래의 여학생을 9개월 동안 7차례 집단 성폭행한 사실이 적발됐다.

하굣길에 성폭행을 당한 A 양(12)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소리까지 질렀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담임교사와의 상담 과정에서 우연히 성폭행 사실이 밝혀져 경찰 조사를 받은 A 양은 수사 초기엔 “학교에 잘 다니려면 선배님 말을 잘 따라야 한다”며 불안해했다. 그러다 진술녹화실에서 여경을 만난 뒤에야 부모에게까지 숨기던 비밀을 털어놓았다.

제주에서도 최근 여중생 2명을 성폭행한 60세 노인이 사법처리됐다. 지체장애아로 언어구사력이 서툴던 여중생들을 조사하는 데 애를 먹던 경찰은 이들이 진술녹화실에 비치된 인형을 사용, 피해상황을 재연해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냈다.

올해 7월 부산에서는 B 양(5)이 친구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나이가 어려 표현이 서툰 데다 불안해하던 B 양도 2, 3일 동안 놀이방처럼 꾸며진 진술녹화실에서 지내면서 인형을 통해 성추행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고 가해자가 했던 말까지 기억해냈다.

경찰 관계자는 “올해 3월 개정 시행된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의 진술녹화가 가능해지고 이에 대한 증거능력이 인정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앞으로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상황 진술 때 해부학적 인형을 적극 활용키로 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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