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촉진기금' 피고인 무더기 무죄 논란

  • 입력 2004년 12월 2일 16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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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무리한 기소인가, 법원의 봐주기 판결인가.

10조원 규모의 '정보화촉진기금'을 둘러싼 비리를 파헤친 검찰 수사로 기소된 정보통신부 공무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에 대해 법원이 대거 무죄 또는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2일 검찰과 법원에 따르면 정보화촉진 기금 비리에 연루돼 1심 선고가 내려진 32명 중 5명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20명은 집행유예, 실형은 7명.

이 사건과 관련된 피고인의 무죄율은 15.6%로 최근 3년간 형사사건의 1심 무죄율(0.7%-1.7%)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치다.

검찰은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하고, 사실 관계도 잘못 파악했다"며 "무죄가 선고된 피고인 뿐 아니라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에 대해서도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높은 무죄 선고율=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정보화촉진기금 비리에 연루된 정통부 공무원과 ETRI 연구원 등 모두 61명(구속기소 24명)을 구속기소했고, 32명에 대해 1심 선고가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는 32명 중 검찰이 배임 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ETRI 행정원 3명과 약식 기소한 기술원 2명 등 5명에 대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주식을 제공한 벤처 기업 관계자들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믿을 수 없고, 사회 상규상 허용 범위를 벗어나는 부정한 청탁 있었다는 점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 선고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주식을 받아서 실익을 챙겼는데도 무죄를 선고하면 수사하지도 말고 기소도 하지 말라는 이야기냐"고 말했다.

실형이 선고된 7명 중 벤처기업 2곳에서 납품 대가 등으로 현금 4억 4000만원을 받은 ETRI 팀장 김모씨가 징역 6년을 선고받아 가장 형이 무거웠다.

현금 6000만원과 5500만원을 받은 ETRI 팀장 2명은 각각 징역 5년과 3년을 선고받았고, 나머지 4명은 모두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줄줄이 집행유예=정보화 촉진 기금 비리와 관련된 피고인 중 최고위직인 오길록 전 ETRI 원장이 2일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돼 풀려났다.

오씨는 벤처기업 주식을 시세보다 2억6000여만원 싼 값에 산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됐지만 재판부는 "초범이고 주식을 통해 전매차익을 챙기지는 않은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벤처기업으로부터 주식을 받아 1750만원~3500만원의 시세 차익을 올린 혐의로 기소된 정통부 공무원과 ETRI 연구원, 현금 1500만원-3000만원을 받은 ETRI 연구원,

이들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벤처기업 관계자 등 모두 20명에 대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검찰은 주식을 받아 1000만원 이상의 시세 차익을 올린 공무원과 ETRI 연구원에 대해 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했지만 법원은 비상장 주식의 가치를 계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형법상 뇌물 수수죄를 적용했다.

받은 액수가 1000만원 이상일 때 적용하는 특가법상 뇌물은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이지만 형법상 뇌물은 5년 이하의 징역이다. 검찰은 법원이 형법상 뇌물 수수를 적용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과 현금 1500만원-3000만원을 받은 연구원들을 집행유예로 풀어준 것에 대해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해 10월 대법원이 '500만원 이상의 뇌물을 받은 공무원에 대해서는 실형을 선고한다'는 내용을 담은 새로운 양형기준을 발표했는데 하급 법원이 사문화시켰다는 것이다.

황진영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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