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 100만호 사업 “ 멀쩡한 그린벨트만 사라질판”

  • 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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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추진 중인 전국 100만가구 임대주택 건설계획이 곳곳에서 부작용을 빚고 있다. 수도권의 경우 서울 여의도 면적의 3배에 이르는 그린벨트가 임대아파트로 바뀔 예정이어서 환경 파괴가 우려되고 있다. 게다가 기반시설을 갖춘 대규모 신도시 개념이 아니라 그린벨트가 있는 곳마다 소규모로 개발하는 방식이어서 1990년 중후반의 난개발 악몽이 재연될 우려도 크다. 지역별 수요를 무시한 중앙정부의 정책 강행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요동치는 수도권 임대주택 개발 현장과 정책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

▽정부 주도 난개발 우려=11일 오전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경기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 동편마을. 마을 복판의 논밭에선 수십여동의 비닐하우스가 급조되고 있었고, 도로변 곳곳에선 주택과 상가 신축공사가 한창이어서 마을 전체가 공사판을 방불케 했다.

이 마을은 그린벨트를 풀어 국민임대주택을 짓겠다는 올해 초 정부 발표의 영향으로 몇 달째 요동치고 있다. 그린벨트인 동편마을과 인근 간촌 부림마을(18만5000여평)에 2007년까지 3500가구 규모의 국민임대주택단지가 들어설 예정.

이곳을 포함해 건설교통부는 서울 15개 지구(134만평), 경기 15개 지구(800만평) 등 전국에 40여개 지구(1500만평, 16만5000가구)를 임대주택단지로 건설할 계획이다.

수도권의 경우 가장 큰 문제는 임대주택단지 예정지 대부분이 그린벨트라는 점.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는 땅이 그린벨트이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경우 지구지정이 예정된 임대주택단지 15곳은 모두 그린벨트 지역이다. 계획대로라면 여의도 면적의 3배가 넘는 녹지가 사라지게 된다.

특히 이 가운데 8곳은 광역교통개선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는 30만평 미만의 소규모 단지다.

이처럼 교통개선대책이나 기반시설 확충이 선행되지 않은 채 임대주택이 무더기로 들어서면 수년 전 경기 용인시 일대에서 빚어졌던 것과 같은 난개발의 폐해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역 현실 무시한 밀어붙이기” 반발=안양시는 9일 관양동 국민임대주택단지 건설계획에 대한 반대성명을 발표했다. 전국에서 세 번째로 인구밀도가 높은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안양의 마지막 개발 가능한 녹지인 관양동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불필요한 그린벨트 훼손”이라고 시측은 주장하고 있다.

군포시에 들어설 임대주택단지(당동 2지구)에 대해서도 지역 시민단체들이 반발하고 있다. 군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산본신도시 내 아파트 중 임대주택 비율은 이미 28%에 이른다. 여기에 추가로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은 지역 내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채 ‘그린벨트가 있으니 짓겠다’는 발상이라고 주민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7월 시행된 ‘국민임대주택건설 등에 관한 특별조치법’은 시도지사가 갖고 있던 개발계획 승인권한을 건교부 장관이 직권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 지자체들의 반대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주먹구구식 목표 수립’=일부 전문가들은 ‘100만호 건설’이라는 목표 자체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국회 건설교통위원회는 최근 국민주택기금결산 검토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세운 임대주택계획에서 수요 자체가 과다하게 예측됐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2000년 통계를 근거로 최저 주거기준 미달가구 현황을 산출했으며, 재개발과 재건축 등으로 인해 주거환경이 개선될 가구까지도 주거기준 미달가구에 포함시켰다는 것.

시도별 주택보급률도 공급계획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수도권 및 광역시를 제외한 강원 충남 전남 경북 등 8개 도는 이미 지난해 기준 주택보급률이 평균 120%에 도달했지만 정부는 이곳에도 20만가구 공급 계획을 세웠다.


남경현기자 bibulus@donga.com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

▼바람직한 대안은▼

전문가들은 서민층을 위한 임대주택 확충은 현재 정부가 밀어붙이는 식의 그린벨트 내 소규모 단지 개발이 아니라 교통 환경 등 기반시설 조성을 선행하면서 지역별 수요 공급에 따라 탄력성 있게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기개발연구원 이상대(李相大) 박사는 “난개발 방지를 위해 경기도 전역을 대상으로 ‘수도권성장관리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는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개발 계획을 남발하고 있다”며 “소규모 개발을 하는 대신 도시기반시설을 갖춘 최소 100만평 이상의 신도시 건설계획과 맞물려 임대주택을 확충해 가야 한다”고 말했다.

단국대 조명래(趙明來) 교수는 “저소득층 주택정책은 재건축이나 기존 시가지 재개발 등을 통해 임대주택 비율을 늘려나가는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최막중(崔莫重) 교수는 “정부의 임대주택단지 정책을 보면 1990년대 중반 난개발을 불러왔던 준농림지 정책을 연상케 한다”며 “무리한 목표 채우기로 인해 그린벨트만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주택보급률이 높은 지역이라도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으로 최저 주거기준을 미달하는 가구를 모두 흡수하기에는 역부족”이라며 “수급계획의 여러 문제들은 추진 과정에서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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