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高大 체육특기생 ‘맞춤교육’ 맡은 이상혁박사

  • 입력 2004년 9월 14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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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일기자
박주일기자
대학의 ‘체육특기생’들은 인문학적 교양이나 글쓰기 등 표현력이 여타 학생에 비해 대체로 부족하기 마련이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운동에 전념하다시피 하며 보냈으니…. 하지만 이를 당연하게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이상혁(李商赫·37) 박사의 지론이다.

고려대에서 국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올해 초부터 모교에서 야구 농구 아이스하키 종목 체육특기생 25명을 상대로 ‘사고와 표현’이라는 2학점짜리 교양필수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고려대는 올해부터 체육특기생들에게 필요한 맞춤교육을 시작했는데, 이씨가 이 프로그램에 자원해 한 과목을 맡은 것. 굳이 운동선수 강의를 맡은 데는 이유가 있다.

“원래 스포츠를 좋아했습니다. 1980년대 초 제가 다녔던 덕수중학교가 현재 서울 동대문 근처의 두산타워 건물 자리에 있었어요. 수업이 끝나면 곧장 동대문야구장으로 가서 프로야구 경기를 보곤 했죠. 축구의 경우 차범근 선수가 뛰던 독일 분데스리가를 특히 좋아해 지금도 20여개의 독일 프로팀 이름을 외울 정돕니다.”

그의 수업은 매번 다른 주제를 주고 글쓰기나 말하기를 시키는 식이다. ‘대회 최우수선수(MVP)가 됐다고 가정하고 기자회견에서 자기 PR 하기’ ‘스포츠 기자가 됐다고 가정하고 자기 기사 써보기’ ‘최근 스포츠 병역 비리에 대한 의견 말하기’ 등 주제가 다양하다.

“엘리트 선수들이 중고교 때 사실 제대로 된 학교교육을 못 받았잖아요. 자기소개를 하라고 하면 이름, 나이, 취미, 가족관계 등 천편일률적이에요. 이 친구들이 졸업하면 실업팀이나 프로팀에 진출하고, 은퇴하면 체육행정도 이끌어야 하는데 이런 식이면 곤란하죠.”

그는 앞으로 언론에 난 운동선수들의 인터뷰 자료를 분석해 스포츠 선수들의 언어 패턴 변화라는 주제로 소논문을 써볼 계획이다. 기왕 강의를 시작한 만큼, 다른 운동선수들도 일종의 ‘소양 지침서’로 삼을 수 있는 내용으로 발전시켰으면 하는 생각이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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