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오리 농가 “이제 희망이 보인다”

  • 입력 2004년 2월 17일 15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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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달여 간 거의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다행히 전국 곳곳에서 닭 오리 소비촉진 캠페인이 펼쳐지면서 이제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습니다."

16일 오후 닭 오리 사육농가들이 밀집한 전남 나주시 왕곡면.

지난해 12월20일 조류독감 발생으로 쑥대밭이 되다시피 한 마을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넘쳤다.

한동안 볼 수 없었던 트럭들이 닭과 오리를 실어 나르고 양계장에서는 출하를 앞둔 달걀을 주워 담는 주민들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관공서와 시민단체 등이 전개하고 있는 사육농가 돕기 운동으로 닭 오리 고기 소비가 점차 늘고 있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이제야 희망이 보인다"면서 모처럼 환한 표정을 지었다.

나주시는 전국 닭 사육농가의 11%, 오리는 17%를 차지하는 국내 최대 주산지.

사육농가들은 지난해 경기 불황으로 닭 오리 소비가 전년에 비해 10% 정도 줄어들어 어려움을 겪던 중 그해 12월 국내 2위 닭 오리 가공업체인 나주시 금천면 ㈜화인코리아가 부도를 낸데 이어 조류독감마저 발생하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조류독감 발생 농가와 의심 농가에서 오리 21만7000여 마리가 도살처분됐다. 한달 동안 이동제한 조치가 취해진 탓에 농가들마다 출하를 못한 닭과 오리로 넘쳐났다. 사료값이 없어 먹이를 주지 못한 농가에서는 연일 닭과 오리 수십 마리가 죽어나갔다.

"농가들이 벼랑 끝까지 몰렸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두 달 정도 계속된다면 아마 살아 남는 농가는 없을 겁니다."

왕곡면 봉학마을에서 산란계 10만 마리를 키우고 있는 김복남(金福男·52)씨는 "뒤늦게나마 각계에서 닭 오리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어 버틸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김씨의 경우 조류독감과 달걀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달걀 소비가 급감하면서 조류독감 발생 이전 75~80원하던 1개당 도매가격이 61원까지 떨어졌다가 최근 69원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계란 1개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76원인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적자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반남면에서 닭 7만5000마리를 기르는 정모씨(42)는 "한동안 육계용 닭 3만여 마리를 출하하지 못해 낙심하고 있었는데 최근 소비운동에 힘입어 1.5㎏짜리 도매값이 8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라 다소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사육농가들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비 촉진운동이 전시용이나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정부에서도 이번 기회에 농가들을 살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종선(金鍾善) 대한양계협회 광주전남지회장은 "사람이 닭고기를 먹고 조류독감에 걸릴 확률은 제로인데도 막연한 공포감이 사육농가들을 파산위기로 내몰았다"면서 "생업이 어려워진 전국 80만 농가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많이 먹고 많이 사주는 것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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