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농어촌 지역 소규모 학교 통합정책 갈등

  • 입력 2003년 12월 2일 18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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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농어촌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이 전교조의 반발에 부딪혀 흐지부지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교조 교사들과 주민 사이에 ‘교육 환경’을 둘러싸고 상당한 인식 차이가 나타나 갈등을 빚고 있지만 교육부와 경북도교육청은 눈치만 보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들해진 적정규모학교 육성계획=교육부는 농어촌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전국 시도교육청을 대상으로 대규모 예산을 투입하는 5개 정책에 대한 공모를 실시했다. 이 가운데 소규모 초·중학교를 통합해 도시학교와 비슷한 규모의 학교를 집중 육성한다는 계획은 경북도내에서 영덕군이 신청했다.

교육부가 지난달 26일 발표한 지정사업 결과에서 영덕군의 소규모 학교 통합 과제는 탈락했다. 영덕군 영덕교육청 영덕군의회는 소규모학교를 통합해 학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입장을 교육부에 건의한 반면 전교조 영덕지회는 이에 반대했다. 교육부는 결과적으로 전교조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영덕군내 소규모 학교 절반을 통합할 경우 500∼1000억원을 지원해 농어촌 교육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꾼다는 교육부의 계획은 좌초될 상황에 놓였다.

▽전교조 “학교 통합은 교육 황폐화”=전교조 쪽은 영덕군내 학교를 절반으로 줄여 통합하면 영덕 교육 절반이 황폐화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겉으로는 농어촌 교육여건 개선이지만 실제로는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농어촌 교육을 파괴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경제논리와 경쟁위주의 교육정책으로 큰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은 반교육적이고 이기적인 정책이라고 전교조 측은 주장한다. 농어촌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교육환경이 좋은 지역으로 떠나는 현상에 대해서도 현재의 폐교 위주 정책이 이를 부추기고 있다는 게 전교조의 입장이다.

전교조 교사들은 “소규모 학교를 통폐합시킬 것이 아니라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서 좋은 학교 만들기에 나서야 하는 것이 정부와 교육당국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주민들 “전교조는 학교 통합을 두려워 한다”=주민 사이에는 작은 학교를 통합해 도시 못지 않은 교육환경을 만드는 게 그나마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농어촌에서 제대로 교육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해마다 학생들이 포항 등 도시지역으로 빠져 나가는데 전교조 교사들은 현실을 모르고 엉뚱한 논리만 펴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한 초등학교 학부모 운영위원은 “학교가 통합돼 명문학교 만들기 분위기가 확산되고 유능한 교사 유치 경쟁까지 벌어질 상황을 전교조는 두려워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소규모 학교 통합이 농어촌 교육을 망치는 게 아니라 전교조가 농어촌 교육 발전을 발목잡는다며 전교조 쪽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학부모는 “군민들이 장학회를 구성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모으면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데 전교조 교사들은 그동안 뭘 했느냐”며 “전교조의 주장은 겉으로 참교육을 내세우지만 변화를 싫어하는 구태”라고 비난했다.

▽주민 공감대가 열쇠=경북도교육청과 교육부는 주민 합의만 있으면 언제든지 농촌 교육 환경 개선 사업을 다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경북도교육청 기획예산과 관계자는 “전교조 측은 폐교되는 학교 학생들의 통학문제 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통학은 문제될 게 없다”며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는 정책이므로 주민들의 공감대 형성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영덕군의회는 전교조 교사들이 무너지는 농어촌 교육현실에 대한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교육환경 개선 노력을 방해한다며 교육부에 계획대로 추진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상열(李相烈) 의장은 “국가의 중요 정책이 전교조가 반대한다는 이유로 맥없이 무너지는 현실이 더 딱하다”며 “영덕에 명문학교를 만들기 위한 주민 공감대 형성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95년 9000명이던 영덕군내 학생수는 현재4700여명. 초등학교 16곳 중 학생수 20명∼80명 소규모 학교는 10곳(63%), 중학교 10곳 중 소규모 학교는 5곳(50%)이다.

영덕=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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