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호택/환경보호와 개발훼방

  • 입력 2003년 9월 23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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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근호 전북 군산시장(69)은 군산 앞바다 신시도에 원전 수거물 관리시설(방폐장)을 유치하기 위해 몇 달 전까지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30대에 국회의원을 지낸 강 시장이 논란 많은 시설을 군산으로 가져가려고 한 이유는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문제점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다.

방폐장을 받아들이는 시군에는 양성자 가속기,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등 각종 지역개발 지원 사업으로 2조원 이상이 투자된다. 큰 매력이었다. 강 시장은 군산 출신인 강현욱 전북도지사의 도움을 받으며 시의원들을 대부분 설득했고 80%에 가까운 주민 동의를 받아냈다. 그러나 신청 마감을 며칠 남겨두고 신시도에서 활성단층이 발견되는 바람에 그만 꿈을 접어야 했다. 아마 방폐장 부지가 군산으로 결정됐더라면 강 시장이 바닥 민심을 다져놓아 부안군에서와 같은 소란스러운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김종규 부안군수는 군산으로 갈 줄 알았던 방폐장이 무주공산으로 남자 신청 마감에 맞추느라 갑작스럽게 유치 선언을 했다. 정부와 부안군이 진행을 다소 늦추고 주민에게 홍보하고 설득하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분위기가 이렇게 나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부안에는 한국의 사회운동 세력이 총집결하다시피 했다. 군수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 분위기에서 찬성 논리 쪽에는 설명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부안군민은 사회운동 단체에만 장마당을 내주지 말고 바로 이웃한 강근호 군산시장 같은 사람도 불러다가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미국 동부가 돌연한 정전으로 암흑과 혼돈의 세계로 바뀌는 것을 지켜봤을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면서도 경제성이 있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전체 전력의 40%를 생산하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매립하고 관리할 시설을 무작정 반대해서는 안 된다.

환경단체들은 부안군민이 지역발전을 위해 간절히 소망하는 새만금사업에 대해서도 시위와 소송 등으로 저지하려 하고 있다. 반대하려면 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반대했어야지 제방공사가 92% 완공된 시점에서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임신 9개월 된 태아를 유산시키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수조원이 투자된 수도권 순환고속도로는 사패산에서 멈춰 수도권의 물류를 제대로 순환시키지 못하는 반쪽짜리 고속도로로 남아 있다. 2000만명의 수도권 주민이 마실 상수원의 오염과 물 부족 사태가 가까운 장래에 예견되는데도 상수원 댐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한다. 경부고속전철 공사는 부산 금정산에서 막혀 있다.

아름다운 강산을 오염과 파괴로부터 구출해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환경단체의 소명의식을 모르는 바 아니다. 개발논리만이 득세하던 이 나라에서 마구잡이 난개발을 저지시키고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환경단체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한국은 산지가 70% 이상이고 3면이 개펄과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다. 모든 산지와 모든 개펄을 벨트로 묶어놓을 순 없다. 보전해야 할 환경과 지속가능한 개발이 필요한 지역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환경단체의 현실적인 감각이 중요하다. 환경단체가 국리민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국책사업에 번번이 제동을 거는 훼방꾼의 이미지를 받지 않으려면 합리적인 현실감각을 되찾아야 한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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