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경준/'주5일근무 재협상' 판깨지나

  • 입력 2003년 7월 29일 18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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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 근무제(근로시간 단축)와 관련한 노-사-정 재협상이 시작도 하기 전에 삐걱거리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8일 정부 입법안이 조금이라도 수정되면 재계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 원내총무는 다음달 12일 임시국회 본회의를 열어 주5일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여야가 8월 12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처리하려면 그 전에 상임위원회(환경노동위), 법제사법위원회 등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8월 8일부터로 예정된 노-사-정 주5일 재협상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말 바꾸기다.

홍 총무는 21일에는 고건(高建)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8월 15일까지 노사정위원회의 논의 결과를 지켜본 뒤 진척이 없으면 법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며 구체적인 시한을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다음달 6일까지 노동계 단일안을 만들어 국회 환경노동위 주재로 재계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 8일부터 집중적인 재협상을 벌인다는 시간표를 마련했다.

그러나 홍 총무가 ‘12일 국회 본회의 처리’로 말을 바꾸자 노동계는 허탈해 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9일 성명을 통해 “한나라당이 갈지(之)자 행보를 하고 있다”며 “재논의도 해보지 않고 재계만 찬성하는 정부안 처리를 강행하겠다는 것은 스스로 재계를 대변하는 당(黨)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유보했던 주5일 국회 강행처리 반대 총파업과 의원 낙선운동도 다시 들고 나올 태세다. 한국노총 관계자도 “정치권이 8월 12일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재협상이 처음부터 ‘모양새 갖추기’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홍 총무측은 “타협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야가 노동계와 재계에 재협상 시간을 준 것은 정부(노사정위)가 책임지고 합의를 이끌어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재협상 공간이 4, 5월 7차례 협상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던 환경노동위로 바뀌어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는 것.

‘방탄용’이라는 일부 시각에도 불구하고 민생 및 경제법안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8월 임시국회를 연다고 밝힌 국회가 노-사-정에 마지막 합의 기회를 주지 않고 주5일 법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파업 등 후유증이 심각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대한민국 민법 제1조는 ‘신의성실의 원칙’이다. 정치권이 말을 바꾸는 바람에 노사관계 불안이 초래된다면 그 책임도 정치권에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경준 사회2부 기자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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