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담]노숙자 무료급식소 운영 '신도림 천사 할머니'

  • 입력 2003년 3월 14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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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하철 신도림역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이막래 할머니가 14일 노인과 노숙자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담고 있다. -원대연기자
서울지하철 신도림역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이막래 할머니가 14일 노인과 노숙자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담고 있다. -원대연기자
14일 낮 12시 서울 신도림역 앞 무료급식소.

10년 넘도록 개인 비용으로 불우이웃을 위한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막래(李莫來·76·서울 구로구 개봉동) 할머니가 식사를 하는 노인들에게 혹시 불편한 게 없는지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많이 잡숴요, 많이. 모자라면 얘기하시고.”

“예, 맛있어요. 할머니도 얼른 드세요.”

수저를 드는 노인들은 연방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에게 인사를 건넸다.

이 할머니가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기 시작한 건 1992년.

다섯 남매를 키우면서도 틈틈이 어려운 이웃을 도왔던 이 할머니는 당시 관악산으로 등산을 갔다 점심도 거른 채 우두커니 앉아 있는 노인들을 보고는 너무 가슴이 아파 관악산 인근에 급식소를 차렸다.

자신이 여경 출신인 할머니는 10년전 사별한 남편도 퇴직하기 전까지 경사로 근무한 경찰이었다.

6·25전쟁 당시 경찰이라는 이유로 인민군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뒤 다리를 절게 된 이 할머니지만 불편한 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새로운 음식을 직접 만들며 급식소를 운영하는 데 온갖 정성을 쏟았다.

이후 급식소가 자리를 잡고 관악구청에서 이를 맡아 운영하게 되자 이 할머니는 1996년 신도림역 앞에 ‘무료급식소 2호점’을 열었다.

급식소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낮 12시 배식을 실시한다.

처음에는 이 할머니 혼자 급식소를 꾸려갔지만 얼마 전부터 구로구청에서 도우미 3명과 함께 싼 가격에 쌀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있다.

하루 평균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인과 노숙자 등은 70∼80명 정도로 부식비를 비롯해 운영비만 한 달에 200여만원이 든다.

물론 이는 고스란히 이 할머니의 몫. 그는 매달 집세로 받는 돈을 모두 급식소 운영에 쏟아붓고 있다.

“노인들이 맛나게 먹는 걸 보면 그냥 마음이 편하고 참 좋아. 자식한테 돈 물려주는 게 뭐가 중요해.”

이런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급식소에서 만난 친구를 잃는 일.

“매일 나오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안 보일 때가 많아. 나보다 정정했는데 먼저 가는 걸 보면 마음이 그렇게 시릴 수가 없어.”

10여년을 하루같이 급식소에 나와 노인들을 챙기던 이 할머니는 지난해 9월 당뇨병과 간경화로 건강이 악화되면서 집에 머무르는 날이 많아졌다.

하지만 식단만큼은 매일 새로운 반찬으로 자신이 직접 짜고 있다. 도우미들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해 음식이 제대로 준비되고 있는지 챙겨야 직성이 풀린다.

소년소녀 가장, 출소자들을 돕는 데도 앞장서는 이 할머니는 더 많은 곳을 다니며 봉사하기 위해 일흔의 나이에 운전면허를 따 손수 차를 몰고 다닌다. 또 과거 경찰을 하던 경험을 살려 사고가 많은 개봉동 인근 사거리에서 1988년부터 13년여 동안 매일 오전 7시부터 9시까지 교통지도를 해 동네에선 ‘교통 할머니’로 불리고 있다.

이 할머니는 “몸은 좀 아프고 힘들어도 목숨이 붙어있는 한 계속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나눔의 삶이 사람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지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미소였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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