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면허 메스 실태-부작용]의무병 출신이 외과수술까지

  • 입력 2003년 2월 9일 19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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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면허 시술자인 ‘오다리’가 의료계의 ‘제도권’에까지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들이 맡은 역할도 단순한 수술 보조에서 점차 외과수술을 도맡을 정도로 전문화되고 광범위해지고 있다. 일부 지방병원의 경우 이들 오다리가 없으면 정상적인 수술이 어려울 정도다.

의료전문 변호사인 신현호(申鉉昊)씨는 “오다리 경력을 가진 원무과장이 병원을 개업하고 관리의사를 고용한 뒤 오히려 의사에게 성형수술 기법을 가르치는 곳도 있다”며 “일부 의과대학에는 미용성형에 대한 강의가 없기 때문에 의사들이 이런 방법으로 미용성형을 배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오다리의 불법의료 행위 실태〓지난해 경기 북부의 한 병원에서 근무한 의사 박모씨(30)는 “군 의무병 출신인 김모씨의 경우 제대 후 약간의 사설 교육을 받은 뒤 오다리로 근무하고 있었다”며 “50대 중반의 다른 오다리는 젊은 전문의보다 병원측의 신뢰를 받을 정도로 의료 행위의 중책을 맡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한 병원의 오다리 이모씨의 경우 병동을 회진하며 상담과 처치까지 할 정도로 ‘준 의사’ 역할을 하고 있다. 3일 오후 3시간에 걸친 수술을 마치고 나온 이씨는 기다리는 환자 가족들에게 “수술이 아주 잘됐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의사 행세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취재팀이 찾아가자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그런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 내가 대답할 의무가 있느냐”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또 다른 경기도의 한 병원에 근무 중인 오다리 박모씨는 “작은 수술의 경우 의사와 내가, 큰 수술이면 1년 경력의 오다리 2명이 더 참여한다”며 “수술 전의 준비작업, 절개부위 벌리기, 부러진 다리 잡고 있기 등 의사가 동시에 할 수 없는 일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기자가 신분을 밝힌 뒤 질문을 던지자 “수술에는 참여하지만 의사가 해야 할 일의 범주를 넘어서지는 않는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이 병원이 의사 1명으로 하루 평균 3, 4건의 수술을 하는 점을 감안하면 오다리가 사실상 수술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다리의 부작용=지난해 강원 인제군의 모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한 오다리 김모씨(46)의 경우 환자를 상대로 마취는 물론 외과수술까지 마구 해오다 경찰에 구속됐다.

김씨는 함께 일하던 공중보건의가 병원을 그만둔 후 병원을 찾아온 환자 100여명에게 마취주사를 놓고 이 중 60여명에게는 맹장수술, 골절 복원수술 등 일반 외과수술까지 한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는 이들의 무면허 의료행위에 의한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점.

지난해 1월 서울 모 병원에서 오다리가 참여한 정형외과 수술 도중 환자 이모씨가 세균에 감염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씨 가족들은 곧 소송을 제기했고 병원측은 감염 사실을 시인하고 환자에게 위자료로 5000만원을 지급해 사건이 무마됐다.

또 지난해 초에는 충청지역의 한 병원에서 경력 7년차의 여성 오다리 김모씨(35)가 혈압 상승제를 해열제로 착각, 주사를 놨다가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구속되기도 했다.

2001년 무면허 시술(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로 경찰에 적발된 건수는 모두 330건. 2000년에는 494건, 1999년에는 478건이 적발됐다.

이는 대부분 피해가 드러난 경우로 오다리의 실제활동 규모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이라는 지적이다.

▽오다리 키우는 의료 현실=통상 종합병원에서 다리뼈가 부러진 환자를 수술할 때는 정형외과 의사 4명이 동원된다. 절개 부위를 양쪽으로 벌리는 데 2명, 부러진 뼈를 맞추는 데 1명, 맞춘 뼈를 고정시킬 금속판을 대고 나사를 박는 의사 1명이 필요하기 때문. 여기에 마취의사 1명과 간호사 2명이 참여한다.

그러나 오다리를 고용하는 일부 지방병원은 정형, 신경외과 수술의 경우 의사 1명과 오다리 1, 2명, 간호사 및 마취의사 각 1명이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집도의를 제외한 의사 3명이 해야 할 일을 모두 오다리가 맡게 되는 것. 더욱이 일주일에 2, 3일 날을 잡아 수술을 몰아서 하는 지방병원들은 건당 3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을 의사가 모두 지켜보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경기 모병원의 김모 이사는 “정형외과 의사가 1명뿐인데 수술 전 과정을 의사가 지켜보다가는 수술은 물론 진료조차 할 수 없다”며 “핵심적인 수술 과정을 제외하면 오다리가 대부분을 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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