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기업연금 도입 3인 3색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8시 32분


노사정 3자는 24일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에서 기업연금 도입 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노사정위는 11월 말까지 기업연금 도입 방안에 합의하도록 시한을 정했으나 지난해 6월 기업연금실무소위를 구성해 1년 반 가까이 끌어온 협상이 합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노사는 모두 현행 퇴직금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근로자의 직장 이동이 잦아지고 연봉제가 확산되며 기업이 도산하는 등의 이유로 퇴직금제도가 유명무실해지고 퇴직금을 적립해야 하는 기업의 부담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도입형태 이견〓한국노총과 경영자총협회, 노동부가 가장 맞서고 있는 쟁점이다. 한국노총은 확정급부형만 도입할 것을, 경총은 원칙적으로 확정갹출형만 도입할 것을 각각 주장하고 있다. 노동부는 두 가지를 모두 허용해 노사의 선택 폭을 넓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확정급부형은 근로자가 퇴직할 때 받을 금액을 미리 정해놓고 기업이 정기적으로 분담금을 적립하는 방식이다. 운용 과정에서 초과수익이 생기면 분담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손실이 나면 기업이 정해진 금액만큼 내야 한다.

반면 확정갹출형은 근로자가 기업에서 정기적으로 받는 분담금을 개인별로 알아서 운용하는 방식. 운용 도중 수익이나 손실이 생기면 근로자가 전적으로 책임을 지게 된다. 근로자 개인이 직접 운용하기보다 금융기관의 상품을 잘 고르는 게 성패를 가르게 된다.

한국노총은 확정갹출형의 경우 주식투자로 손실을 보면 근로자가 모든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확정급부형을 요구하고 있다. 확정급부형은 현행 종업원퇴직보험과 비슷해 제도 변화가 크지 않다. 퇴직보험 적립액은 지난해 말 현재 11조원을 넘었다.

반면 경총은 확정급부형이 근로자 퇴직 때까지 기업이 관리해야 하므로 부담이 크다고 꺼리는 실정이다. 반면 확정갹출형은 평균 수익률이 7% 정도 되면 기업 분담률이 6%대로 떨어진다고 계산하고 있다. 현재 퇴직금 분담률은 총급여의 8.3%이다.

▽적용범위 논란〓한국노총은 기업연금 도입이 근로자의 노후생활 보장을 위한 것이라면 가급적 많은 근로자가 혜택을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퇴직금제도가 근로자 5명이상 기업에만 적용돼 전체 취업자의 34%만 혜택을 받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

이에 따라 한국노총은 확정급부형 기업연금을 도입하되 이번 기회에 근로자 5명 미만 기업에도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연금 적용이 힘들다면 퇴직금제도를 5명 미만 사업장에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차선책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총과 노동부는 갑자기 퇴직금제도를 5명 미만 사업장에도 적용할 경우 중소영세기업의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말 현재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 수는 465만여명으로 전체(1360만여명)의 34.2%에 이른다.

▽그 밖의 변수〓현재 노사정위 논의에 불참하고 있는 민주노총은 기업연금 도입과정에서 영세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소외되고 기업연금 적립금이 대거 주식시장에 투자될 위험이 있다며 도입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한국노총은 노사정위에서 민주노총의 요구를 완전히 배제하고 논의할 수가 없기 때문에 협상에 집중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날 노사정위 상무위에서는 경총이 기업연금 도입을 계기로 국민연금을 묶어 연금제도 전반을 손질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연금제도 전체를 수술할 경우 기업연금 도입은 장기간 지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이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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