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장희빈의 억센 氣가 바위를 뚫었나

  • 입력 2002년 10월 11일 17시 47분


장희빈의 묘인 ‘대빈묘’ 주위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뚫고 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장희빈의 기를 누르기 위해 갖다놓은 바위가 참나무가 뚫고 올라오면서 두 동강 났다.-이동영기자
장희빈의 묘인 ‘대빈묘’ 주위에 있는 커다란 바위를 뚫고 참나무가 자라고 있다. 장희빈의 기를 누르기 위해 갖다놓은 바위가 참나무가 뚫고 올라오면서 두 동강 났다.-이동영기자

‘장희빈의 기(氣)가 바위도 뚫었다?’

조선조 숙종 비(妃)인 장희빈의 기운을 누르기 위해 묘소 뒤편에 가져다 놓은 바위를 뚫고 참나무가 자라고 있어 화제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용두동 서오릉에 있는 ‘대빈묘’는 장희빈의 묘. 이 묘의 봉분 뒤편 7m 거리에는 둘레 3m 규모의 커다란 바위가 자리잡고 있다.

일반적으로 묘역 주변에서는 원래 있던 바위도 치우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1970년 경기 광주시에 있던 장희빈의 묘를 이곳으로 이장하면서 누군가 ‘바위로 묘역을 눌러야 장씨의 억센 기를 다스릴 수 있다’며 커다란 바위를 묘역 뒤편으로 옮겨 두었다는 것.

장희빈은 TV 사극에도 자주 등장했던 인물. 궁녀의 신분으로 궁궐에 들어갔다가 숙종의 총애를 받아 빈(嬪)으로 신분이 상승해 경종을 낳았으며 1690년에는 인현왕후를 대신해 중전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천한 신분에서 국모(國母)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권력을 잡은 이후 국정을 농단해 사약을 받는 기구한 삶을 산 여성이다. 장희빈은 ‘한 시대를 주름잡은 여걸’ 또는 ‘기가 센 희대의 여성’ 등으로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그의 묘는 당초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광주시(당시 광주군 오포면 문형리) 야산에 방치돼 있었다. 1970년 묘를 통과하는 도로가 만들어지면서 숙종과 예종 등이 모셔진 서오릉으로 옮겨졌다.

하지만 장씨의 묘는 ‘능’이라는 호칭을 쓰지 못하며 왕족의 능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무인석(武人石)이나 호석(虎石)도 찾아볼 수 없다. 일반적인 사대부 가문 수준으로 꾸며져 기와 담장과 묘비 등만 갖춰져 있다.

묘를 정면에서 바라볼 때 묘의 약간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는 크기도 엄청나지만 묘역에 자리잡고 있어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10여년 이상 된 것으로 보이는 참나무가 그 바위를 뚫고 자라고 있어 인근 주민들은 ‘장희빈의 억센 기가 바위를 뚫은 것’이라며 신비하게 여기고 있다.

몇 년 전 바위가 두동강 난 것에 대해 주민들은 참나무가 바위 틈 속을 뚫고 자라는 바람에 기를 이기지 못한 바위가 부셔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양시 정동일 문화재전문위원(37)은 “묘역에 바위가 있는 것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옮겼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바위 사이로 나무까지 자라고 있어 주민들이 장씨의 기가 센 것을 그 원인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양〓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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