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루사' 한반도 강타]강릉지역 왜 비 많이 왔나

  • 입력 2002년 9월 1일 18시 56분


8월31일 하루 동안 강원 강릉지역에 870.5㎜의 폭우가 내려 1904년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하루 최고 강수량을 기록했다.

또 이날 제주 한라산 어리목에도 855.5㎜의 비가 쏟아져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이는 1981년 9월2일 전남 장흥에 내린 547.4㎜를 21년 만에 경신한 것이다.

특히 강릉지역의 경우 이 지역에서 1년 동안 내리는 비(1401.9㎜)의 절반 이상(62%)이 이날 내렸다.

또 31일 시간당 강수량도 최고 100.5㎜에 달해 1987년 7월16일 수립됐던 기록(60㎜·강릉)을 훨씬 넘어섰다.

이처럼 강릉에 사상 초유의 폭우가 쏟아진 것은 태풍이 열대 해상에서 몰고 온 더운 공기와 원래 강릉지역에 형성돼 있던 저온다습한 공기가 합쳐져 태백산맥에 부딪치면서 상승해 지상 1.5㎞ 상공의 찬 공기와 만나면서 집중적인 비를 뿌렸기 때문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태풍이 한반도로 북상하면서 태풍의 회전력에 의해 북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강원 영동지방에서 이번 태풍과 상관없이 이미 형성돼 있던 저온다습한 공기가 빨려 들어가면서 강릉지역에 거대한 비구름대가 만들어졌다”면서 “이 비구름대가 태백산맥의 영향으로 상승해 지상 1.5㎞ 상공의 찬 공기와 강릉 상공에서 만나 집중적인 비를 뿌렸다”고 설명했다.

또 강릉시가 속초시나 동해시보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기록적으로 많은 비가 내린 요인으로 분석됐다.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지역이 태백산맥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바다에서 비교적 가까운 속초나 동해보다는 산맥쪽에 치우쳐 있는 강릉의 강수량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다.

31일 강수량은 강릉이 870.5㎜로 속초 294.5㎜, 동해 319.5㎜ 등에 비해 3배 정도 많았다. 한라산에 위치한 어리목 일대에 많은 비가 내린 것도 비슷하다.

태풍 ‘루사’가 몰고 온 폭풍우 구름이 북서풍을 타고 한라산에 부딪치면서 세력이 더욱 발달해 한라산 중턱 부근에 위치한 어리목에 집중호우가 내렸다는 것이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루사'위력 '사라'이후 최고▼

제15호 태풍 ‘루사’는 그동안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가운데 강수량으로는 최고치를 기록했고 그 규모와 바람의 세기로는 사상 두 번째를 차지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태풍의 위력을 측정할 수 있는 주요 수치인 최저기압을 보면 루사는 1959년 9월 15일부터 4일간 한반도를 휩쓴 태풍 ‘사라’ 이후 가장 강력했다. 당시 사라는 최저기압이 952hPa을 기록했는데 루사는 전남 여수에서 측정된 최저기압이 970hPa로 사라에 못 미쳤다.

이번 태풍은 또 육지에 상륙한 후에는 세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태풍의 일반적인 모습과는 달리 육지 상륙 후에도 위력이 별로 떨어지지 않는 특이한 형태를 보였다.

태풍은 적도 부근 열대 해상에서 발생해 일본 부근 해상까지 진출한 뒤 북위 30도선을 넘으면 세력이 약해져 한반도에 도착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루사는 달랐다.

지난달 23일 오전 9시경 괌섬 동북동쪽 1800㎞ 부근 해상에서 중심기압 1000hPa의 소형 태풍으로 태어난 루사는 29일 오전 9시경에는 중심기압 950hPa, 최대풍속 초속 41m의 강한 ‘대형’ 태풍으로 성장했다.

루사는 이후 30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남남동쪽 430㎞ 부근 해상까지 진출하는 동안 줄곧 중심기압 950hPa 안팎의 세력을 유지했으며 특히 31일 오후 3시경 전남 고흥반도를 통해 우리나라 내륙에 상륙한 뒤에도 위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기상청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반도 남해상의 해수면 온도가 26∼27도로 평년보다 1∼2도 높아 태풍에 에너지원인 수증기를 대량 공급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북상하면서 머금고 있던 수증기를 비로 뿌리면서 ‘체력’이 약해진 루사가 남해상에서 발생한 다량의 수증기를 흡수해 ‘체력’을 보강했다는 것. 여기에 한반도 동서로 자리잡은 북태평양 고기압이 루사의 진로를 가로막은 것도 한몫을 했다.

시속 30㎞ 안팎으로 북진하던 진행속도가 시속 20㎞ 안팎으로 떨어지면서 루사가 남해상에서 수증기를 공급받아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게 도와준 것이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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