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인천 금곡동 '헌책방거리'…이곳을 아시나요

  • 입력 2002년 5월 10일 20시 06분


경인전철 도원역에서 언덕배기를 내려와 배다리 철교를 끼고 오른편 골목으로 들어서면 헌책방 거리를 만나게 된다. 이 곳이 동구 금곡동 14번지 일대 ‘헌책방 거리’다.

인천에 고향을 두고 어느덧 40줄을 넘긴 중년이라면 가끔 이 곳을 찾아 누렇게 바랜 책갈피를 넘기며 셰익스피어, 톨스토이, 니체 등 대문호(大文豪)의 작품을 사서 읽었었을 법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금곡동 헌책방은 6·25 전쟁 직후인 1953년 폐허가 된 거리에서 이동식 리어카 책방이 하나둘 모여들면서 시작됐다.

당시에는 창영동(영화초등학교 인근)과 인현동(인천여고 인근)등 2곳에 헌책방 거리가 있었으나 60년대초 인현동 책방이 창영동으로 옮겨왔다. 40여개에 달하던 창영동 헌책방들도 80년대초부터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현재의 금곡동 일대에 10개의 헌책방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

이곳은 서울 청계천 헌책방거리와 함께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헌책방 거리를 형성해 부산, 목포, 원주는 물론 멀리 제주에 있는 헌책방에까지 책을 공급하기도 했다.

전성기였던 60년대 초엔 창영동 헌책방 거리를 ‘작은 동대문’이라고 부르기도 했을 만큼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반세기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만큼 숱한 사연도 많다.

변변한 영어 관련서적을 구하기 힘들었던 60·70년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헌책방 주인이 직접 미군부대 등을 전전하며 헌책을 구해오기도 했다. 미군들이 보던 영문전문서적에서부터 잡지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사오면 학생들이 앞다퉈 책을 구입, 밤새워 영어공부를 했다고 한다.

45년째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장경환씨(65)는 그래서 서점 이름을 한미(韓美)서점이라고 붙였다.

그는 “그렇게 밤을 새워 공부한 친구들이 이젠 대학교수, 변호사 등으로 출세를 해 가끔씩 안부를 묻는 전화가 걸려 오곤 한다”고 말했다.

아벨서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는 김희숙씨(37)는 학창시절부터 20년째 헌 책방을 드나들던 단골. 그는 주부가 된 뒤 아예 부근으로 이사와 헌책방에서 일하고 있는 케이스. 김씨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책에 대한 애착이 더 깊어져 직장을 바꿨다”고 말했다.

이 서점 주인 곽현숙씨(53)는 “책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수와 같다. ‘살아있는 글들이 살아있는 가슴에’란 우리 서점의 표어처럼 많은 사람들이 책과 호흡하며 살길 바란다”고 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곳의 책값은 예나 지금이나 시중가에 절반 값이다. 정가 2만7000원인 영한사전의 경우 재고가 2만원선이고 헌 사전은 1만원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단행본 소설 등 헌책은 2000∼4000원 정도면 살 수 있다. 유아용 전집류도 시중가의 40∼50% 수준이고 외국서적은 신간의 60∼70% 가격에 판매한다. 어학 컴퓨터 음악 건강 등 전문서적과 이조실록 등 다양한 책들이 이곳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관할 동구청은 헌책방 거리 활성화를 위해 정기적으로 간담회를 갖고 대책을 찾고 있지만 인터넷 등 ‘시대적 대세’에 밀려 역부족을 실감하고 있다.

대창서림 김주환씨(70)는 “서점을 이어받겠다는 자식들이 없어 금창동 헌책방 거리는 다음 세대에는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지 않을 까 걱정이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차준호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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