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김 사건]14년만에 베일벗는 진실

  • 입력 2001년 12월 10일 18시 47분


국가 기관에 의해 장기간 은폐 왜곡됐던 ‘수지 김(본명 김옥분·金玉分)씨 살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경찰과 국가정보원이 공모해 진실규명의 기회를 또 다시 원천봉쇄한 진상까지 밝혀지고 있다. 아직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지만 검찰 수사 결과대로라면 김씨를 살해하고 간첩 누명까지 씌운 살인범은 벤처기업가로서 화려한 세월을 보냈다. 반면 김씨의 가족들은 ‘간첩의 가족’이라는 오명을 쓴 채 인고의 세월을 살아야 했다. 14년만에 드러난 진실을 밝힌다.

◆왜 조작-은폐 했나

전두환(全斗煥) 정권 말기였던 87년 1월8일 태국 방콕에서는 놀랄 만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S통상 홍콩 주재원으로 알려진 윤태식(尹泰植·당시 28세)씨가 “북한이 총련계 공작원이자 홍콩 교포인 아내(수지 김)를 통해 나를 납치하려고 했다”고 충격적인 주장을 한 것이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윤씨의 목소리는 떨렸고 당시 상황에서 그의 말의 진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도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윤씨는 다음날 곧바로 귀국해 서울에서도 기자회견을 가졌다. 윤씨는 ‘납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반공이야말로 나를 지키기 위한 것임을 느꼈다”는 말까지 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지난달 말 검찰은 윤씨가 아내를 살해한 뒤 사건을 위장하기 위해 ‘납북 자작극’을 벌였다며 윤씨를 구속했다. 지난해 3월 내사에 착수한 이후 20개월에 걸친 비공개 수사 결과였다.

검찰은 또 “당시 안기부가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지만 안기부의 위상 추락 등을 고려해 은폐 왜곡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지검 외사부에 따르면 안기부는 윤씨를 서울로 데리고 온 87년 1월9일 윤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기부는 진실을 밝힐 의사가 전혀 없었다. 내부의 일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냥 납치극으로 가자’고 결론지은 것이다.

수지 김은 윤씨가 귀국한 뒤 17일째 되던 87년 1월26일 홍콩의 아파트에서 목이 졸려 숨진 채 발견됐다. 수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안기부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홍콩 경찰의 윤씨에 대한 수사 요청도 거부했다.

검찰은 “안기부는 사건을 덮어두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다음 수사 협조를 요청하는 홍콩 경찰에 ‘대공(對共)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협조가 불가능하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안기부의 진실 은폐 보고선상에 있던 이학봉(李鶴捧) 당시 2차장을 9일 소환조사했고 장세동(張世東) 당시 안기부장에 대한 조사를 앞두고 있다. 15년 동안 감춰져 온 진실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김승련기자>srkim@donga.com

◆작년 재수사 중단 경위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지난해 13년간 은폐 왜곡됐던 ‘수지 김 살해사건’의 진상을 떳떳이 밝힐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고의로 묵살하고 사건을 다시 덮었다.

그 기회는 언론이 제공했다. 주간동아가 지난해 1월20일 의혹을 제기한 기사를 보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그달 말 서울방송(SBS)의 홍콩 경찰을 상대로 한 취재 내용을 보고 받은 직후 사건의 실체에 강한 의심을 품었다.

검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당시 사건이 단순 살인사건일 수도 있다는 보고서까지 작성했다. 국정원도 당시 언론 취재를 계기로 사건의 실체가 87년 은폐된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계속 숨기기로 결정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경찰의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경찰청 외사3과는 2월 11, 12일 이틀 연속 수지 김의 남편 윤태식(尹泰植·43)씨를 불러 조사했다.

윤씨는 “이미 87년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조사를 다 받았고 죄가 없어 풀려났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2월14일 국정원에 87년 당시의 사건기록을 넘겨줄 것을 요청했다.

김승일 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이 이무영(李茂永) 경찰청장을 찾아온 것은 바로 다음날. 김 전 국장은 엄익준(嚴翼駿·작고) 당시 2차장에게서 “경찰에 사건이 공개되면 곤란하다는 뜻을 전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 전 청장을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국장은 이 전 청장에게 “사건이 실제는 단순 살인사건이니 협조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전 청장은 그날 김모 전 경찰청 외사관리관에게 “국정원에 사건을 넘기라”고 지시했다는 것.

2월16일 경찰 수사 담당자는 수사중지 보고서를 작성했고 다음날 국정원은 경찰에서 사건 기록을 가져간 뒤 며칠이 지나 기록을 돌려줬다. 그러나 이 전 청장은 “지난해 사건의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실무자들끼리 협의하라는 지시만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김 전 국장은 올해 11월15일 모 호텔 커피숍에서 이 전 청장을 만나 “내가 곤란해졌으니 엄 전 차장과 협의한 걸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 주장보다 사건의 실체를 이 전 청장에게 알려줬다는 김 전 국장과, 협조 지시를 받았다는 김 전 외사관리관 등의 진술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이 전 청장과 김 전 국장을 구속한 것이다.

검찰은 “두 사람은 피해자가 십수년간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면서도 공모해 경찰 수사를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사건 어떻게 다시 불거졌나

14년만에 진상이 밝혀진 ‘수지 김 살해 은폐조작 사건’ 수사의 단서를 제공한 것은 언론의 끈질긴 추적 보도였다.

이 사건은 87년 사건 발생 후 점차 잊혀져갔다. 그러다 다시 수사당국과 여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20일자 주간동아에 ‘87년 납북미수사건을 아십니까’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오면서부터.

주간동아 이정훈(李政勳) 기자는 95년 7월부터 주홍콩 한국대사관에 근무한 외무부 직원 등을 찾아다니며 이 사건을 추적하고 있었다. 주간동아측은 그때까지의 취재 결과를 토대로 김씨가 북한 공작원이라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내용과 함께 전두환(全斗煥) 정권 당시 국가안전기획부(국가정보원의 전신)가 이 사건을 공안정국 조성에 이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 보도 이후 서울방송(SBS)은 주간동아의 취재자료를 넘겨받아 지난해 2월12일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을 통해 홍콩 경찰의 수사진행 상황과 윤태식(尹泰植)씨의 사기 행각 등을 보도했다.서울지검 외사부가 지난해 3월 주간동아와 SBS의 보도 내용을 참고해 내사에 들어갔으며 윤씨에 대한 구속 영장을 청구할 때도 보도 내용을 참고자료로 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수지 김 사건 첫 보도가 나가던 87년 당시 언론에도 ‘어두운 과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87년 1월 국내 언론은 수지 김의 남편 윤씨가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될 뻔했다가 탈출했다는 안기부의 기자회견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정부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던 언론들은 안기부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의 납북 공작 실태와 윤씨의 북한대사관 탈출기 등을 자세히 보도해 공안정국 조성에도 기여했다.국내 언론은 87년 1월26일 수지 김의 시체가 발견된 이후 홍콩 언론들이 타살 의혹을 잇따라 제기하며 홍콩 경찰의 수사 상황을 보도했을 때에도 침묵했다.

김종훈(金宗勳) 변호사는 10일 “언론이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면 진실은 영원히 은폐될 수 없다는 점과 언론의 침묵은 곧 사건 관련자의 고통이라는 점을 일깨워줬다”고 말했다.

<정위용기자>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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