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난개발]준농림지 도입 '탁상행정'이 발단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57분


경기 남양주시와 용인시 등 수도권 도시들이 난(亂)개발로 ‘신음’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가 사전 검토를 충분히 하지 않은 채 ‘준농림지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남양주시 와부읍은 대부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었으나 준농림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준농림지가 몰려 있던 덕소리 일대에 잇따라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난개발이 이뤄졌다. 시는 96년 덕소리에 처음으로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이후 10여개 건설사들이 이 일대에 아파트 건립사업 허가를 잇따라 신청할 당시 일부 도로 개설만 계획했을 뿐 구체적인 교통망과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확충하는 내용의 도시계획은 수립하지 않았다. 시는 현재 5년마다 실시하게 돼 있는 도시계획 재정비를 통해 문제점을 해결할 방침이나 이미 난개발이 상당히 진행된 상태여서 이를 개선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15만㎡미만 용적률 2배 올려 고층아파트 난립▼

▽준농림지 제도〓준농림지는 건설교통부가 93년 8월 국토이용관리법을 개정하면서 생겨났다. 법 개정 당시 준농림지를 ‘농림업의 진흥과 산림 보전을 위해 이용하되 개발 용도로도 이용할 수 있는 지역’으로 모호하게 규정하는 바람에 처음부터 난개발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특히 ‘15만㎡(약 4만5000평) 미만은 시장 군수가 준도시 지역으로 국토이용계획을 변경해 용적률을 100%에서 200%로 바꿔 개발할 수 있다’는 조항은 고층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으로 분석된다.

또 3만㎡(약 9090평) 이상으로 개발할 경우에만 도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설치하도록 했기 때문에 기반시설이 거의 없는 ‘나 홀로 아파트’가 마구 들어설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기도 했다.

▼신도시개발 꺼려 편법개발… 업체 로비도 한몫▼

▽제도 도입 배경〓건교부가 이 제도를 도입한 표면적인 목적은 택지 공급을 늘려 주택 부족에 따른 집값 폭등을 막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건교부 내부적으로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이 일산과 분당 등 수도권 5대 신도시의 부실 시공 등으로 신도시 개발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신도시 개발이 아닌 ‘편법’으로 택지를 개발하기 위해 준농림지 제도가 도입됐다는 것.

건교부 관계자는 “당시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건교부 실무자들은 ‘신도시 건설이 바람직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지만 대통령의 반대 의지가 확고해 택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준농림지 제도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건설업체들의 로비도 제도 도입에 한몫을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반시설 설치 비용이 포함된 택지를 분양 받아 아파트를 짓는 것보다 준농림지를 사서 준도시 지역으로 국토이용계획을 변경할 경우 수익이 훨씬 많이 남았기 때문이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국토이용계획만 변경되면 평당 1만원에 샀던 땅이 수백만원대로 뛰었기 때문에 준농림지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했다”고 밝혔다.

▼학교등 기반시설 마련 외면 사후대책 어려움▼

▽현황〓현재 9500여 가구 주민들이 살고 있는 덕소리 일대에는 96년 개발이 시작된 이후 새로 지은 학교가 전혀 없다. 기존 덕소초등학교는 1930년대에 설립된 것이다. 이는 관련 법규에 건설업체가 2500가구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때만 학교 부지를 기부채납토록 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국토에서 준농림지가 차지하고 있는 비율은 25.8%(약 2만5700㎢). 이 제도가 도입된 이후 현재까지 서울의 면적(600㎢)보다 조금 적은 550㎢가 준도시 지역으로 변경돼 31만5000여 가구의 아파트가 지어졌거나 건설 중이다.

건교부가 추가 난개발을 막기 위해 올 10월 ‘국토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해 2003년부터 준농림지 제도를 폐지할 방침이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뒷북 행정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송진흡기자>jinhup@donga.com

▼전문가가 말하는 해결책▼

전문가들은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일대가 이미 상당 부분 개발이 끝나 개선이 쉽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우선적으로 도로망을 확충하고 신규 아파트의 경우 기반시설 조성 등의 전제 조건을 충족시켜야 허가를 내주는 등의 단기 및 장기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토연구원 토지주택 연구실장 박헌주(朴憲注·51) 박사는 기존 주민들은 물론 입주를 앞둔 ‘미래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도로망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는 남은 공간을 활용해 도로를 확충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한 뒤 여의치 않을 경우 도로를 지하화하거나 고가화하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도로를 포함한 기반 시설을 확충할 때는 이미 개발이 끝난 곳의 수요와 함께 향후 수요를 함께 계산해야 하며 덕소리에는 현재 공원 등 녹지가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외곽에 공원을 조성해 생활 환경을 다소나마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단기간에 많은 기반 시설을 확충할 경우 필요한 예산은 자치단체가 일단 지방채를 발행하거나 금융기관의 융자를 통해 충당하고 향후 개발에 따른 취득세와 등록세 등의 지방세 수입을 통해 갚아 나가는 방식이 좋다고 조언했다.

한편 연세대 사회환경건축공학부 김갑성(金甲星·38) 교수는 덕소리 일대의 난개발 개선책으로 단기 및 장기 대책을 각각 제시했다.

김 교수는 우선 단기 대책으로 개발이 끝난 곳은 현실적으로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높은 곳에는 시설을 보완해 안전 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인도가 없는 도로는 임시분리대를 설치해 보행자를 보호하고 출퇴근 시간대에는 안전요원을 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을 출입하는 차량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므로 임시 우회도로를 개설해 주민들이 이용하도록 하고 대형 트럭은 기존 아파트단지 쪽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장기 대책으로 자치단체가 아파트 신축 사업을 허가할 경우 도로와 학교 상하수도 등 기반 시설을 갖추는 것을 전제 조건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금부터라도 사업 시행자에게 기반 시설을 부담시키면 향후 자치단체가 부담할 예산을 줄이는 것은 물론 난개발 확산 방지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기 때문.

김 교수는 “덕소리 일대는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었음에도 체계적인 개발 계획을 세우지 못해 난개발로 이어지고 말았다”며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개선책을 서둘러 시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영기자>argus@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