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DS우리 모두의 일입니다]감염자 치료 정부지원 늘려야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27분



‘사고로 발가락이 잘려 아내에 업혀 응급실로 실려갔다. 다른 사람에게 내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을 옮길 순 없다고 되뇌었다. 의사에게 에이즈 감염 사실을 알렸다. 의사는 바로 안색이 바뀌더니 수술할 수 없노라고 통보해 왔다. 여름이었다. 발가락은 썩어 들어가는데…. 공무원들이 와서 매달려 사흘만에 겨우 수술은 받았지만 항생제 주사도 맞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야 했다. 보건소에서도 항생제 주사를 놓아주지 않았다. 썩어 가는 발가락을 잡고 아내와 함께 얼마나 울었던지, 모진 게 목숨이라며….’

지방에 거주하는 한 에이즈 감염자가 에이즈 전문가인 서울대병원 오명돈(吳明燉) 교수에게 최근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 내용이다.

에이즈 환자는 치료비가 없어 고통을 겪는 일 말고도 몇 배의 고통을 받고 있다. 가장 큰 서러움은 병을 옮기지 않으려는 생각에서 의료진에 감염사실을 알린 뒤 어김없이 겪게 되는 냉대와 멸시라고 이들은 말한다.

에이즈 감염자 김모씨(40)는 “치통 치질 등 질환으로 고생하더라도 참고 지내야 한다”며 치료 대책을 호소했다. 부부와 딸이 감염된 신모씨(30·여)는 “의료진에 감염 사실을 알리고 나서 받을 냉대의 눈길이 두려워 ‘제발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말했다.

에이즈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병원조차 소독 등을 문제삼아 생명이 위독한 경우가 아니면 수술을 뒤로 미루는 일이 흔하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인턴 이모씨(30)는 “에이즈 환자가 맹장염으로 입원했지만 일반환자에 대한 수술이 없는 토요일만 에이즈 환자를 수술해 며칠 동안 진통제만 놓아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균관대 의대 감염내과 송재훈(宋在薰) 교수는 “에이즈 감염자가 감염 사실을 알리지 않고 치료를 받는다면 병원 내 감염에 무관심한 한국인지라 에이즈가 크게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며 감염 사실을 밝힌 사람을 냉대하는 현실을 걱정했다.

평소 치료비도 큰 부담이다. 에이즈 감염자가 바이러스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3, 4가지 약제를 동시에 복용하는 ‘칵테일요법’을 받는 경우 약값의 절반은 보험으로, 나머지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반씩 부담한다.

정부와 지자체 부담분은 환자가 먼저 낸 뒤 환급을 받는데 해당 지자체는 월별 예산 범위를 넘어 청구가 들어오면 다음 분기까지 지급을 미루는 일이 흔하다.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까닭에 에이즈 외 각종 질환을 치료하는 비용조차 이들에게는 커다란 부담이 된다.

최모씨(39)는 카드로 치료비를 메우다 연체료 때문에 치료를 포기했다. 1년 뒤 뇌막에 곰팡이가 번져 혼수상태로 병원 응급실에 실려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입원비 1600여만원 중 680만원을 본인 부담금으로 내 경제 사정이 더욱 어렵게 됐다.

칵테일요법은 건강이 입원할 만큼 악화되는 것을 막아줄 뿐만 아니라 전염력도 낮추는 효과가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이 부부 중 한 사람이 에이즈 감염자인 415쌍을 30개월간 관찰한 결과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 12% 정도가 배우자에게 에이즈를 옮겼다.

그러나 칵테일요법을 받아 혈액 1㎖에 바이러스가 1500개 이하인 사람은 단 한 명도 배우자에게 병을 옮기지 않았다. 또 임신부가 제대로 치료 받으면 아이는 감염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다.

또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입원 위험도 준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칵테일요법을 받는 에이즈 감염자는 꾸준히 늘고 있지만 입원 환자는 98년 31명(51회)에서 올해 22명(28회)으로 줄었다.

서울대 의대 내과 최강원 교수는 “에이즈 감염자를 제대로 치료받게 하는 것은 감염자뿐만 아니라 비감염자를 에이즈로부터 보호하는 길”이라면서 감염자가 치료를 포기하고 숨어버리면 피해는 사회 전체로 퍼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성주·차지완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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