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사기피해 증권사도 배상책임"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25분


적대적 인수합병(M&A) 목적의 주식 공개매수가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실패한 경우 이를 시도한 회사는 물론 주간사인 증권회사도 주식투자자의 손실에 책임이 있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주식 공개매수로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집단소송을 낸데 대해 처음 내려진 것이어서 관련업계에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지법 민사합의22부(윤우진·尹又進 부장판사)는 수천억원대 사기혐의로 수배 중인 변인호(卞丙鎬)씨가 97년 주도한 ㈜레이디가구 주식 공개매수에 응모했던 노모씨 등 217명이 변씨가 운영하던 중원과 대우증권 등 4개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들은 원고 196명에게 9억여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중원 등은 공개매수 신고일 불과 4개월 전 부도가 난 회사였는데도 공개매수에 나선 뒤 처분할 수 없는 주식이나 인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자금을 공개매수 대금으로 신고서 등에 허위기재, 공고한 잘못이 있으므로 이를 믿고 응모했던 투자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대우증권은 공개매수 절차의 단순한 대행사일 뿐 법적 책임이 있는 대리인은 아니었고 중원측의 허위기재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노씨 등은 97년 8월 중원측이 공고한 공개매수에 응모했으나 증권감독원의 조사 결과 허위로 자금조달 계획을 세운 사실이 밝혀져 공개매수가 무산된 뒤 주가가 폭락하자 소송을 냈다.

변씨는 레이디가구 주식을 사들인 뒤 공개매수 계획을 밝혀 주가가 상승하면 주식을 처분, 차익을 챙길 계획이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레이디가구측이 경영권 방어 대신 주식을 내다 팔자 계획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3900억원대의 금융사기로 항소심 재판을 받던 98년 12월 중국으로 달아난 변씨는 이후에도 하수인을 내세워 레이디가구를 인수, 추가 금융사기 범행을 시도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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